[사랑과 자비]<17>고개 들어 山寺의 창을 보니

  • 입력 2003년 5월 30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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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스님
창을 열고 앉아서 바라보면 고목나무의 우듬지(나뭇가지의 꼭대기)가 보인다. 그러다 일어나 창가에 서면 우듬지 너머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싱그러운 바람과 향긋한 풀 향기, 이곳에 와서는 방에 향을 피우지 앉는다. 언제나 풀 향기가 창을 타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서는 TV를 보지도 않는다. 숲과 별의 향연을 바라보는 것이 더 즐겁기 때문이다. 서울 생활을 마감하고 이곳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새롭게 얻은 내 방의 이즈음 풍경이다.

내 방의 창가에 서면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새삼 느낄 수가 있다. 우리 선조들은 정원을 조성하되 조경(造景)보다는 차경(借景)에 더 역점을 두었다고 한다. 조경은 다분히 인위적이고 차경은 인위를 벗어난 자연스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먼 산, 먼 하늘까지도 빌려서 정원으로 삼을 줄 알았던 우리 선조들의 마음속에는 무소유의 넉넉함이 있었던 것이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장 그리웠던 것은 자연이었다. 산과 하늘과 바람소리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가끔 서울을 벗어나 산사를 찾고는 했지만 그것은 잠시의 위안에 지나지 않았다. 별들의 안부가 궁금해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서울의 하늘에서는 별들의 안부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서울이라는 정원 속에는 백화점 영화관 등등의 조경은 있었지만, 산과 바다와 별들을 바라볼 수 있는 차경의 무한함은 없었다. 폐쇄와 반복의 인위가 내게는 서울이었다.

이제 나는 서울을 떠나, 먼 산과 먼 바다로 난 산사의 창가에 서 있다. 작은 방의 큰 창은 자연으로 나아가는 출구이고 선조들의 넉넉한 무소유의 마음을 배우는 학습장의 의미를 갖는다. 이 창을 통해 나는 날마다 나의 모습과 마음을 저 산과 바다에 비추어 볼 것이다. 더러우면 지우고 지나치면 자르고 넘치면 비워서 자연과 썩 잘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만 싶다.

창가에 서서 새기는 내 다짐들을 향해 이토록 고운 5월이 그렇게 살라고 끝없이 나를 유혹한다.

성전스님 서산 부석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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