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포석 人事의 세계]방준혁 넷마블 사장<上>

  • 입력 2003년 5월 27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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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연기자
원대연기자
《신세대 최고경영자(CEO)의 사람 보는 눈은 어떻게 다를까. 좀 더 다양한 ‘인사의 세계’가 궁금하다는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번 ‘인간포석-인사의 세계’에선 요즘 주목받고 있는 젊은 벤처 기업가 방준혁(房俊爀·35) 넷마블 사장의 얘기를 들어 보았다.》

지난해 2월 어느 늦은 밤.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곯아떨어져 있던 넷마블 방준혁 사장을 깨웠다.

“사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일단은 졸업을 해야 하고 6년이나 저를 기다려온 여자와 결혼도 해야 합니다. 장남으로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수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술에 취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넷마블의 수석 엔지니어 오재훈 차장. 당시 28세의 대학 휴학생이었던 그는 방 사장의 권유대로 전자계산학과 공부를 미룬 채 일에 매달려 왔지만 1년만 더 일해 달라는 방사장의 요청을 받고 고민해 왔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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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뜻은 따라야지…. 그러나 부모님이 허락하시면 내 제안을 받아들일 텐가?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가자.”

방 사장은 그 길로 오 차장을 태우고 그의 고향인 경북 의성군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새벽, 눈이 휘둥그레진 오 차장의 부모님 앞에 다짜고짜 무릎을 꿇었다.

“아드님은 지금 한창 물이 오른 엔지니어입니다. 회사로서도 이 중요한 시기를 놓치면 다시 기회를 잡기 어렵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성공시키고 결혼도 시키겠습니다. 저를 믿고 1년만 더 아드님을 맡겨주십시오.”

1년 뒤인 올 2월, 온라인 게임업체 넷마블은 270억원의 매출에 158억원의 흑자를 내는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다. 무(無)에서 출발했던 3년 전에 비하면 괄목할 일이었다. 그리고 방 사장은 그달 오 차장의 결혼식에 주례를 섰다. 약속을 지킨 셈이다.

수많은 기업이 명멸(明滅)하고 셀 수 없는 인력이 철새처럼 자리를 옮기는 벤처업계. 불안정한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인재는 회사의 절실한 자산이자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다. 이런 점에서 방 사장의 인재 발굴과 운용 방식은 대기업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는 확신이 서면 끝까지 붙잡아 키우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용장(勇將)’이라고 불리는 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녹아있는 인재 채용 철학이기도 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170여명의 ‘넷마블 군단’은 회사가 2년 만에 모회사인 플레너스와 합병, 당당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넷마블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IT 거품이 막 꺼지기 시작한 2000년 초. 들어올 투자금도, 남다른 기술도 없는 상황에서 믿을 것은 사람뿐이었다. 회사 규모가 작아 많은 인력을 채용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관건은 “누구를 뽑아 쓸 것이냐”였다.

그가 당시 1순위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회사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남들보다 끈덕지게 회사에 달라붙는 애정과 열정이 필수조건이었다. 단순하고 평범하게 들리지만 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이를 강조한다.

“벤처기업은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조직이 불안정하고 와해되기 쉽습니다. 이런 데서 자신이 잘난 신세대라는 생각으로 들어온 사람은 조금만 위기가 닥쳐와도 회사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이래서는 회사가 살 수 없어요.”

여기에는 두 번의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방 사장 자신의 과거가 녹아 있다. 한때 일류대 출신, 해외 MBA 유학파 출신 등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들과 야심차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해결책을 찾는 대신 하나 둘씩 더 많은 보수를 주는 회사로 빠져나가 버린 것.

그래서 그는 입사 지원자에게 회사에 대한 애정과 함께 간절함이 있는지를 살핀다. “지원자의 태도와 함께 눈을 뚫어지게 관찰하면 그 간절함이 어느 정도 보인다”는 설명이다. 입사 면접도 보통 3사람 당 1시간 정도씩 꼼꼼하게 진행한다. 이 자리에서는 회사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해주기는커녕 “사생활도 많이 희생해야 할 만큼 업무량이 많을 텐데 자신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더 좋은 곳에서 입사 통보가 오면 미련 없이 털고 나갈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 ‘넷마블맨’으로 뼈를 묻겠다는 사람을 찾는 작업이다. (계속)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방준혁 사장은 ▼

테헤란 밸리에 포진한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카리스마가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듣는 35세 사장. 경희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두차례 사업에 실패했다. 2000년 3월 8명의 게임 개발자들과 함께 넷마블을 설립해 테트리스, 알까기 등 웹보드 게임으로 2년 만에 매출액 대비 58%의 순이익률을 내는 흑자 기업으로 키워냈다. 지난해 받은 개인 성과급 31억원을 직원들에게 모두 나눠준 일화는 유명하다. 26일 엔터테인먼트 기업 플레너스와의 합병으로 합병기업의 지분 25.7%를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한때 넷마블 지분의 51%를 갖고 갔던 모기업을 사실상 인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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