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여성화가들 세상을 말한다

  • 입력 2003년 5월 20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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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도시(Sleeping City)' 730×250㎝ 2003.
'잠자는 도시(Sleeping City)' 730×250㎝ 2003.

《확고한 자기세계를 구축하면서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여성 작가들의 전시가 최근 들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문화계

각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여성들의 활약이 화단(畵壇)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주목할만한 여성 작가들의 전시를 소개한다.》

▼다양하게

◆신경희 전=치밀하면서도 상징성이 높은 조형미를 펼치며 공산미술제 대상(1995)과 석남미술상(1997)을 잇따라 수상한 신씨(40)가 퀼트와 나무 패널 등으로 만든 근작 20여점을 선보인다. 색감의 깊이와 스케일, 조형의 무게와 힘이 더욱 강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는 신씨의 화면은 만지고 꿰매고 붙이고 오리고 문지르고 뜨고 칠하는 등 손에 의한 수공이라는 점이 특징. 종이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하루 12시간의 강도높고 정교한 노동을 통해 이뤄지는 작업을 섬세함으로 대표되는 여성성과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 작가는 거부감을 보인다. 신씨는 “여성 작가라는 틀이 아닌 범 작가 정신의 맥락에서 봐달라”고 주문했다. 이번에 선 보이는 ‘잠자는 도시(Sleeping City)’시리즈는 온갖 시각적인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도시’의 양면성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보여준다. 집중적으로 힘이 실린 이미지들의 밀도감과 상징의 깊이가 사색적이고 웅장하다. 각 패널에 구축된 구상 추상적 이미지들은 언뜻 개별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미지 위에 수십개의 작은 못들을 박거나, 덧칠을 달리 해서 얻은 부조 효과는 설치 작품을 보는 듯한 독특한 입체감을 준다. 30일까지 갤러리 인. 02-732-4677∼8

▼섬세하게

'思惟空間(사유공간)' 108×190㎝ 2002.

◆원문자 전=원문자씨(59·이화여대 미술학부 교수)는 박래현씨에 이어 여성 화가로선 두 번째로 국전 대통령상(1976년)을 수상한 중견 작가. 꽃과 새를 중심으로 한 화조도로 출발해 추상화로 방향을 튼 그가 오랜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사유공간’이라는 제목이 붙은 200∼900호 대작들이 선보인다. 작가는 “여자 화가는 나이들면 대작을 못한다”는 천경자 화백의 말에 자극을 받아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대작을 하겠다고 한다. 40년 가깝게 몰두해 온 한지를 통한 먹 작업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번 작품들은 화면 운영이 절제된 가운데 치말한 구성이 돋보이는 기존 작업들의 연장선이다. 기하학적 도형의 변주가 두드러지면서도 새의 날개, 식물의 싹, 물고기 등 구체적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들이 등장한다. 흰 면을 과거보다 더 많이 할애해 은은하고 정겨운 한지의 재질감을 한껏 살리고 공간의 여유로 담백한 풍요를 안겨주고 있다는 평이다. 21~31일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 02-720-5114

▼진솔하게

작가가 그린 화투시리즈 중 '만화방창'.

◆김점선 전=단순한 선, 선명한 색채, 동화적인 그림으로 독특한 자기영역을 확보해온 서양화가 김점선씨(57). 그가 1983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올 20년째를 맞아 30회 전시회를 연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그의 그림에 대해 “대상이 풍기는 아리까리한 위선을 걷어내고 직통으로 본질을 포착하기 때문에 사실적인 그림보다 훨씬 더 모란은 모란답고, 백일홍은 백일홍 외에 다른 아무 것도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동안 발표해 온 밝고 화사한 그림대신 어둡고 파괴적인 그림들을 많이 내놓았다. ‘진짜 김점선의 거칠고 외로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겠다는 작가는 회화 작품과 컴퓨터 그림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 많은 그림을 그리느라 어깨에 탈이 난 작가는 손목과 손가락 힘만으로 컴퓨터 그림을 그렸다. 6월 21일까지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갤러리. 02-2112-2988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개성있게

◆여성작가 3인전=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의 ‘미완의 내러티브(endless narrative)’ 전에 초대된 서양화가 염성순(42), 한국화가 강미선(42), 조각가 유현미(39)씨는 각자 서로 다른 장르에서 상징적 에로티시즘(염), 한국적 미니멀리즘(강), 세련된 여성성(유)이라는 상이한 세계를 가지면서 여러가지 제약된 여건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작업해왔다. 미술관측은 이 점을 주목해 마치 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연결하듯 ‘여성의 정체성’을 코드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염씨는 경쟁과 학벌주의로 얼룩진 현대 사회에서 겪는 내면의 상처를 여성 특유의 에로티시즘과 잠재된 욕망으로 보듬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강씨는 주부와 여성이 누리는 삶에 주목해 일상에서 발견되는 대상을 소재로 끌어 들였다. 유씨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남성 중심적 한국 사회로 재진입하면서 느낀 낯섦과 혼란, 공포, 그리고 소통 욕망 등을 퍼즐 작업을 통해 표현했다. 24일 오후 2시 ‘여성 미술가들의 현실’을 주제로 포럼이 열린다. 6월 22일까지. 02-2020-2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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