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자들 이대론 안돼"

  • 입력 2003년 5월 15일 15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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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남자들이 환골탈태해야 달구벌이 발전하지요."

대구 남자들은 대구 여성에게서 어떤 점수를 받고 있을까? 25년 동안 교사로 일하고 있는 달구벌 토박이 여성의 눈에 비친 대구 남자들은 한마디로 '이대론 안된다' 이다.

"얼핏 보면 굉장히 남자다워 보이는 대구 남성들. 그러나 한번 같이 살아보라. 남자다움에 얼마나 (여성들이) 멍이 들게 되는지. 대구 남자들의 대범함을 가장한 무심함, 이기적 성향, 여자에 대한 폄하, 언어 폭력, 여성 밀어내기…."

대구 남성들에게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보라'고 촉구한 사람은 여성운동가가 아니다. 경북고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 석귀화(石貴華·51) 교사가 주인공.

석 교사는 5월 가정의 달에 맞춰 '달구벌에서는 달구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제목의 수필집을 펴냈다. 280쪽 분량에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시작으로 교단을 지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지만 군데군데 엿보이는 대구 남성에 대한 '반성 촉구'가 저자의 숨은 '의도'처럼 느껴진다. 조용하고 차분한 첫인상에 비해 좀 뜻밖의 이야기들이다.

"대구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직장 일을 하면서 생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지금은 사정이 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군데군데 배어있는 남성 우월 분위기는 두텁게 남아있습니다. 많은 가정에 가부장제가 굳건해 집안에서는 여자들이 맥을 못 추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이 지역 정서로는 도대체 가정 일을 도와주는 남편이란 남자들 세계에서 졸장부이거나 거의 희귀동물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대구 남성에 대한 석 교사의 '투쟁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남동생과 오빠에게 밀리는 상황과 대결했고, 그의 표현대로 '재떨이까지 집어 던진' 아버지도 싸움의 대상이었다.

"20년 근무한 대구시내 어느 여고에서는 '여자와 사기그릇은 내돌리면 깨진다'는 말이 학교 안에 공공연했습니다. 여교사가 무슨 고3 담임을 하느냐며 맡기지 않았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까지 계속 됐으니까요. 여교사가 아이를 낳더라도 가급적 방학 때를 맞추라고 했을 정도였답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죠."

그는 "세상은 빨리 변하는데 아직도 대구에 남아있는 '남존여비' '남아선호' 분위기에 대해 대구 남성들을 향해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꽉 막힌 듯한 대구 남자들이 변하지 않으면 달구벌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번 크게 외치고 홀가분해지고 싶다"고 했다. 달구벌이라는 좁은 지역을 벗어나 바깥에서 달구벌을 바라보는 대구 남성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 책 제목도 이런 마음을 담았다.

대구 남성에 대한 석 교사의 '반격'에는 팔순을 넘긴 어머니가 오히려 든든한 버팀목이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는 행상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지금도 딸을 옆에서 지켜준다. 석 교사는 "밤늦도록 딸이 쓴 책을 읽으며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 큰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은 것 같다"고 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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