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출산을 권하려면…

  • 입력 2003년 4월 16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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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3년, 집행유예 15년, 거기에다 평생 보호감호.’

한국 사회에서 자녀를 둔 엄마의 형량이다. 첫 아기가 생기는 그 순간 여성은 불어터진 젖가슴을 보며 ‘여성에서 엄마로’ ‘날개 없는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제 손으로 밥 먹고 사람 꼴 만드는 데 걸리는 3년 동안 엄마는 꼼짝없는 감옥살이다.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화장실에서 마음대로 ‘볼일’도 못 본다. 여성들이 멀쩡한 직장을 버려야 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대학 입학 때까지는 집행유예 기간이다. 아이가 아플까, 학교에서 ‘왕따’ 당하지 않을까에 목매며 사교육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한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온갖 귀동냥을 하며 좋은 학군, 좋은 학원을 찾아다니고 학교에 늦지 않도록 아침마다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대기해야 한다.

운이 좋아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 걱정, 취직이나 결혼을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보호감호 기간에는 손자 손녀를 돌보는 애프터서비스까지 제공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의 급격한 출산율 하락은 이렇듯 힘겨운 아이 기르기에 대한 여성들의 복수극이라고 할 만하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한국의 여성 1명당 출산율은 1.17명(잠정)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보다도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1960년대 출산율 6.0명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변화다.

출산율 저하는 한국에서만 겪는 현상은 아니다. “나는 짐승처럼 우리에 갇혀서 새끼를 칠 수 없다”고 설파한 미국의 여권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영향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에서도 가임 여성의 42%가 자녀가 없다는 통계가 있다.뭐든 빠른 것을 좋아해서일까.

문제는 우리 사회의 출산율 하락의 속도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격하다는 것. 인구감소는 국가 경쟁력 약화로 직결되고 노인 부양에 따른 책임은 차세대가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국내 한 입양기관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연극배우 윤석화씨가 아기를 입양했습니다만 한국에서 국내 입양이 저조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혈연을 중시하는 전통 탓도 있지만 실은 양육에의 무한책임 때문입니다. 외국에서는 입양아는 물론 친자식도 18세만 되면 독립해 나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있으면 부모가 죽을 때까지 연대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부가 40년 만에 ‘산아 제한’에서 ‘출산 장려’로 인구정책을 바꿨다. 정부는 보육환경 개선이나 세제혜택, 여성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장애요인 제거 등을 통해 출산을 늘리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훌륭한 사회복지정책을 갖춘 프랑스는 한때 출산을 권장하기 위해 심야시간대에 포르노 영화를 방영하도록 하기도 했다. 인구 감소와 이민 급증에 속 타는 프랑스 정부의 다급한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우리는 프랑스와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출산 기피에는 오랫동안 억눌린 여성의 자의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한국의 지나친 경쟁시스템, 그리고 가정이 자녀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양육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출산 기피를 젊은 세대의 이기심 탓으로 돌리기 전에 부모의 골수까지 빼먹는 현재의 양육 여건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포르노 영화 대신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을 원하는 것이다.

정성희 사회2부차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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