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부부들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적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스케줄이 없는 한 달의 반 정도는 하루 24시간을 같이 보냅니다. 저녁 때 잠시 모이는 다른 가정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셈이죠.”(양천흠)
“남편과 함께 비행을 나가도 각자 계획에 따라 움직여요. 비행 나가서까지 붙어다니며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고 싶지 않거든요. 남편은 좋아하는 컴퓨터게임을 하고 저는 쇼핑을 다니는 등 사생활을 존중해주는 편이죠.”(이혜정)
직업상 가장 힘든 점은 수면 부족과 시차 적응. 장거리 비행일 경우 자동항법장치가 있긴 해도 안전운행을 위해 거의 잠을 잘 수 없고, 미주 유럽 등에 갈 경우엔 밤낮이 바뀌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양씨는 “통상 시차가 1시간인 나라에 가면 7시간을 쉬어야 하는데 시차가 더 큰 나라에 가서도 3∼5일 만에 왕복을 해야 하므로 건강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오랜 비행을 한 뒤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아기를 돌보느라 남편의 식사를 직접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같은 일을 하는 남편이 이해해 주지 않았다면 ‘빵점 아내’가 될 뻔했다”고 덧붙였다.
‘하늘’이 맺어줬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 파일럿 부부가 처음 만난 것은 1996년. 양씨는 2년 후배이자 국내 최초의 여성 민간항공 조종사로 입사한 이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그는 직접적인 구애보다 우회적인 방법을 택했다. 항공기 기종별 면허 취득법이나 운행법규 관련 자료를 빌려주겠다는 구실을 내세워 수시로 둘만의 만남을 가진 것. 결국 이들은 1999년 결혼에 골인했고 지난해 4월 아들(호진)도 얻었다.
이씨는 지금도 남편을 ‘선배’라 부른다. 나이는 한 살 적지만 조종 경력에선 선배라는 이유에서다. 55세 정년이 될 때까지 ‘비행 인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이 부부의 ‘비행 예찬론’도 재미있다.
“유성과 오로라처럼 희귀한 풍경을 감상하고, 구름 바로 위로 비행하며 마치 스키를 타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해요. 조종석에 앉아 있으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죠. 1만여m 상공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죠.”(양천흠)
“기계 다루는 것을 좋아해 4년여의 스튜어디스 생활을 그만두고 파일럿을 선택했을 정도예요. 티끌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내 손으로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한없이 투명한 바다를 내려다보는 즐거움,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경험이죠.”(이혜정)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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