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꽃 주제 산문집 펴낸 소설가 윤후명씨

  • 입력 2003년 3월 16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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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꽃 사랑을 산문집으로 펴낸 소설가 윤후명씨. 그는 모든 식물이 나름의 삶의 방식을 가진 위대한 생산자라고 말한다. -변영욱기자
평생의 꽃 사랑을 산문집으로 펴낸 소설가 윤후명씨. 그는 모든 식물이 나름의 삶의 방식을 가진 위대한 생산자라고 말한다. -변영욱기자
소설가 윤후명(尹厚明·57)씨가 고등학교 시절 처음 택한 특별활동은 문예반이 아니라 원예반이었다. 이제껏 그가 식물에 바친 시간은 길다. ‘태어나면서부터’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철들면서부터’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런 그가 이른 봄, 푸릇푸릇한 향내 가득한 산문집 ‘꽃’을 들고 나타났다. ‘윤후명의 식물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산문집에는 봄의 노루귀와 금낭화, 여름의 작약과 백리향, 가을의 구절초와 쑥부쟁이, 겨울의 설중매와 동백까지 100여 가지의 꽃과 나무에 얽힌 자신의 삶과 원예학적 지식이 옹골지게 담겼다. 12일 서울 인사동에서 ‘꽃’을 든 작가를 만났다.

“어려서부터 유난스럽게 학교 화단이나 뒷산에서 식물을 캐오고, 때론 슬쩍 훔쳐 오기도 하고….(웃음) 대학 때부터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식물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나봐요. 난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인데, 그렇지 않은 두 가지가 문학과 식물이란 말이지요.”

학창시절의 윤씨는 식물학자를 꿈꿨지만 수학을 못해 이과에 진학할 수 없었다. 그는 연세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는데 돌이켜보니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사귀어 온 풀과 나무는 그의 작품 곳곳에 오롯이 남아 푸른 잎을 흔들어댄다.

“잘 알려진 식물뿐 아니라 참뱀차즈기나 놋젓가락나물 등 희귀식물까지 자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소설에서 식물을 통해 묘사하는 것이 버릇이 됐어요. 내심 문학과 식물이 한데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요. 이럴 때 나는 식물학자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단편 ‘하늘지팡이’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우리들 인생에 누군들 의미 있는 나무 한 그루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없겠지만, 내게도 나무 한 그루가 있다”로 시작한다. 1995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하얀 배’ 등에서도 초록빛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의 산문집 뒤 표지에는 ‘서울 종로5가 야생화 꽃장수’ 이상옥씨의 발문이 실려 있다. “거의 십 년은 계속되었을까.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종로5가를 드나들었다…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식물을 무던히도 좋아하는 소설가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작가에게 무심코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답은 쉽지 않았다.

“식물은 생산자이고 동물은 소비자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얘깁니다. ‘근본적’인 생산이라는 점에서요. 삶의 근본과 연결되는 문제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식물 하나하나가 다 소중합니다. 어느 하나만 꼽을 수는 없지요. 모든 식물이 다 오묘하고 나름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걸요. ‘아름답다’는 표현 그 이상이지요.”

그는 식물이 위대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식물은 1차적으로 구휼과 구제의 빛이며, 2차적으로 아름다움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식물은 ‘기도’의 대상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그의 집 앞마당은 작가에게 ‘사원(寺院)’인 셈이다.

“어느 날인가 세어 봤더니 작은 마당에 200여 종의 식물이 있더라고요. 풍성할 것 같지만 워낙 작은 것들이라….(웃음) 그런데 올해는 웬일인지 꽃이 좀 늦어요. 복수초(福壽草) 꽃망울만 겨우 올라오네요. 이름에 복 복(福)자와 목숨 수(壽)자를 넣어 새봄부터 복 많이 받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을 환하게 전하는 것 같아요.”

노루귀가 흰꽃 연분홍꽃 연보라꽃을 앞다퉈 피워내고, 이에 뒤질세라 섬노루귀 복수초 크로커스가 나선다. 곧 산수유가 ‘노랗게 흐느끼는’(박목월 시인의 시) 꽃을 피우고, 아랫녘에서는 매화가 한창이리라. 봄은 이렇게 온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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