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상문학상 받는 소설가 김인숙씨

  • 입력 2003년 1월 15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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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기 기자
/강병기 기자
소설가 김인숙씨(40)가 중국에 머문 지 이달로 6개월째. 지난해 8월 딸(조선·15)과 함께 중국 다롄(大連)에 ‘살러’ 갔다.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지난주 잠시 귀국한 김씨를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그의 볼에 남겨 놓은 발간 흔적은 중국과 묘하게 얽혀든다. “언니네 집에 머물고 있다”는 그는 “완전히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이지요”하고 빙긋 웃었다.

그는 “돌아온다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여행을 즐기지 않는 그는 어디론가 떠났다가 돌아올 때, 톨게이트가 보이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가 중국으로 떠난 것은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무엇’의 정체는 모르겠어요, 지금도. 알 때까지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지요. 살던 곳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쉬는 것이잖아요. 중국에서는 정말 ‘쉰다’는 것을 느껴요.”

‘니하오마’, 단 한마디만 알고 떠난 중국길. 대도시를 피하고, 기후를 고려해 지도를 보고 쿡 찍듯이 다롄으로 정했다. 장을 볼 때, 심지어 맥도널드에서도 영어가 통하지 않아 중국어 학교에 등록을 했다. 그에겐 중국어 공부도 “재밌는 취미생활”이다.

“너무너무 규칙적인 생활을 해요. 오전 5시반에 일어나서 오후 8시나 9시면 잠자리에 들어요. ‘바른생활 아줌마’예요. (웃음) 낮에는 학교 다니고. 아이도 중국생활에 적응을 잘 해요. 아직까지는 중국에서 사는 게 재밌어요.”

“엄마책 읽어봐도 되느냐”고 조심스레 묻는 선이에게 93년 말부터 95년 초까지 호주에 머무르며 쓴 ‘먼 길’을 줬더니 다 읽고선 “엄마, 멋지다”고 칭찬해주더란다. 그래도 아직 자신이 쓴 ‘청소년 관람 불가 장면’은 딸에게 보여주는 것이 민망하다며 웃는다. “선이 때문에 가장 많이 웃고, 가장 많이 울어요”하고 코를 찡긋 하는, 아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어쩔 수 없는 ‘엄마’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1학년에 재학중이던 1983년, 갓 스물의 나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한 그는 ‘여대생 작가’라는 타이틀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을 중심에 둔 등단작 ‘상실의 계절’과 잇달아 발표한 ‘핏줄’은 암울했던 80년대, 시대의 고민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또래 학생들에게 심한 질타를 받았다.

“내 앞에 와서 비난을 퍼붓곤 했는 걸요. 굉장히 힘들었어요. 신춘문예 당선이 내게 영예가 아니었어요. 당선되지 않았어도 대학생활을 그렇게 했을까? 내 생(生)이 완전히 달라졌지요. 사회적 관심도 갖게 되고, 생각도 성격도 달라지고….”

이후 그는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함께 걷는 길’ ‘칼날과 사랑’ 등을 발표하며 시대의 현실을 문학으로 형상화해 낸다. “참 미묘한데…. ‘운동’을 했다고 할 수도, 안 했다고 할 수도 없고…. 누가 그래요. ‘투항’한 거라고.” (웃음)

10여년 전 발표했던 ‘그래서 너를 안는다’를 재출간하려고 최근 손질 중이라는 그는 “서투름 속에 담긴 진정성과 미덕이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찬찬히 돌아보게 한다”고 했다.

“나는 무엇이든 다 쓸 수 있어요, 도색소설까지도. 그러나 변함 없는 것은 내 뿌리가 80년대라는 거예요. 앞으로 무얼 쓰든 느리고 완만하게 쓰고 싶어요. 지금이 그런 시기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등단 20여년, 세월의 무게만으로도 묵직한 나날들. ‘평생 글만 써 온’ 김인숙은 “한번씩 잠깐 쉬면서 뒤를 돌아볼 때가 있다. 글쓰기는 서둘러 할 일이 아닌, 삶의 무게를 가지고 나가야 하는 일”이라며 조그만 쉼표를 찍는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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