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시 읽는 아이´

  • 입력 2002년 12월 17일 18시 50분


◇시 읽는 아이/정지용 황순원 박용래 바쇼 프레베르 시 정경심 등 그림/각권 43쪽 내외 각권 8000원 비룡소(6세∼초등 저학년)

좋은 시를 천천히 읽는 일은 섬세한 언어감각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길러준다. 일부 유아용 그림책이나 동시집을 제외하면 어린이책 모두가 산문 일색으로 되어 있는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은 애초부터 시와 가까워질 기회를 차단 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점에서 이 시리즈의 기획은 뜻깊게 보인다. 동시로 한정짓지 않고 정지용, 황순원, 박용래에서부터 17세기 일본의 바쇼와 20세기 프랑스의 자크 프레베르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기성 시인들의 시를 화가들의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펼쳐 보여주고 있는데, 그래서일까? 하나같이 쉽고 단순한 시어들 속에서도 그 어떤 고아한 품격으로 빛나는 시들이라는 느낌이다. 또 일본의 고전시가인 하이쿠와 프랑스 산문시까지 체험할 수 있다.

이 시리즈에서 먼저 눈에 띄는 이름은 단연 황순원이다. ‘소나기’의 바로 그 작가 아닌가? 그분이 시도 썼나 하면서 책을 열면 ‘오리’란 시가 나온다. ‘2 /자가 /너를 /흉내 냈다’, 이게 다다. 뒤이은 ‘옥수수’란 시는 ‘이빨을 몽땅 /드러내고 /웃는다’로 끝나고 ‘빌딩’은 ‘하모니카 /불고 싶다’, 단 두 줄뿐이다. ‘나비’는 또 어떤가? ‘날개만 /하늑이는 /게 /꽃에게 /수염붙잡/힌 /모양야’. 유머와 단순함 속에서도 사물에 대한 신선한 시각에 읽는 사람의 눈마저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게 어째 좀 싱거워 보인다면 정지용의 시들을 읽어보기를.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 편인 말아,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말) 라는 시나 ‘자네는 인어를 잡아 /아씨를 삼을 수 있나? /달이 이리 창백한 밤엔 /따뜻한 바다 속에 여행도 하려니…’(피리) 같은 시들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에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게, 프레베르의 산문시들이다. 아이들이 흔히 접할 법한 시들보다 호흡이 길기 때문에 오히려 시를 친숙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줄 법하다. 그들이 이 시들을 읽어 내려나가면서 ‘유리창은 모래가 되고 /잉크는 물이 되고 /책상은 나무가 되고/ 분필은 절벽이 되고 /깃털 펜은 새가’ 되는 마법, 그러니까 사물이 모든 화장을 지우고 본디 그 모습 그대로 맑은 얼굴로 응시하는 세계를 체험해 보았으면 좋겠다.

주미사 동덕여대 강의전임교수·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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