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없는 마음의 관문을 뚫는다"…울진 '불영사' 동안거 하던날

  • 입력 2002년 11월 21일 17시 35분


19일부터 조계종 90여개 선원에서 스님들이 동안거에 들어갔다. 불영사 천축선원 비구니스님들이 정진에 들어가기전 소임을 정하고 있다. 오른쪽은 불영사./울진〓허문명기자
19일부터 조계종 90여개 선원에서 스님들이 동안거에 들어갔다. 불영사 천축선원 비구니스님들이 정진에 들어가기전 소임을 정하고 있다. 오른쪽은 불영사./울진〓허문명기자

경북 울진과 봉화를 구불구불 잇는 36번 국도를 따라 15㎞ 이어지는 불영계곡은 국내에서 몇 손가락안에 꼽히는 명승지다. 옛날엔 제법 오지였지만 지난해 12월 중앙 고속도로(춘천∼대구)가 개통된 뒤로는 서울에서 넉넉하게 5시간 안이면 닿는다.

이 곳에 자리한 비구니 사찰 불영사(佛影寺·경북 울진군 서면 하원리). 신라 진덕여왕 5년(65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절 안으로 들어가는 계곡 길은 가지런한 흙길이다. 비구니 스님들의 정갈함을 초입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차로 10여분 따라 들어가니 가람이 보인다.

지난 18일 저녁 6시경. 사위는 이미 칠흙같은 어둠에 잠겼다. 차가운 겨울바람으로 잔뜩 움츠러든 몸이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둥둥 울리는 법고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천축산 위로 떠 오른 보름달이 앞마당 연못에 비쳐 장관이다. 달 그림자 아래 천축산 위 바위 봉우리가 흡사 관세음보살상처럼 연못에 보인다. 의상대사가 이것을 보고 부처의 그림자(불영·佛影)가 비치는 절로 이름지었다는 것이 실감난다.

이 날은 스님들의 3개월 겨울 한철나기 정진인 동안거(冬安居) 결제일 하루 전. 10분간만 특별히 허용된 선방 취재로 들어가 본 법당동쪽 별채인 천축선원(天竺禪院)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80여명 비구니 스님들이 빙 둘러앉아 안거기간 맡아야 할 소임을 정하고 있었다.

‘공양주(음식담당)에 혜안 법승스님, 선덕(공부지도)에 석천 명오스님, 다각(차 담당)에 휘묵 지수 동현스님, 명등(전기관리)에 현조스님…’ 입승(立僧·선방관리 책임)스님의 호명을 받은 스님들은 ‘잘 살겠습니다’‘열심히 하겠습니다’ 크게 외치고 합장했다. 스님들의 이름을 적은 용상방(龍像方·소임과 자리위치를 써 넣은 벽보)이 내일 선방벽에 붙으면 본격적인 정진이 시작된다.

보통 대규모 사찰에서는 재가 신자들이 식사준비와 소소한 살림을 거들어 주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스님들이 한다. 직접 재배한 고추와 배추로 3000포기 김장도 이미 며칠 전 마쳤다. 지난 여름 휩쓸고 간 수해는 절 입구 다리가 끊어질 정도로 대단했지만, 다행히 고추밭과 배추밭이 무사해 ‘동안거 잘 지내라’는 부처님의 가피(부처나 보살이 사람들에게 힘을 줌)라고 스님들은 고마워했다.

불영사 계율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안거기간에 하루 14시간 수행하는 것은 물론 철저한 묵언과 산문밖 외출금지,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하는 일) 등이 어느 절보다 철저하다.

주지 일운스님은 세수(世壽가 50이라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일 정도로 젊고 맑은 얼굴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엄격한 모습이 지난 10여년간 불영사를 동해 제일가는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바꾼 주역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스님은 “불법의 이치만 알아도 세상보는 눈이 달라진다”며 “불영사에 오는 사람들이 자비와 평화를 느끼고 간다는 말이 제일 기쁘다”고 말했다.울진〓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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