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신현구씨 "평생 함께한 기타가 조강지처"

  • 동아일보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9시 06분


반백년 세월 가까이 한결같이 살아온 수원 당수동 집을 떠나지 않고 수제 클래식 기타를 제작하고 있는 신현구씨가 기타 제작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수원〓권재현기자
반백년 세월 가까이 한결같이 살아온 수원 당수동 집을 떠나지 않고 수제 클래식 기타를 제작하고 있는 신현구씨가 기타 제작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수원〓권재현기자
어쩌면 그에게 기타는 평생을 함께한 ‘조강지처(糟糠之妻)’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만든 기타를 품에 안고 카바티나(영화 ‘디어헌터’의 주제곡)를 연주하는 모습에서는 아내의 몸을 익숙하게 쓰다듬는 남편의 무심한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듯하다.
수제(手製) 클래식기타 제작자 신현구(申鉉球·47·경기 수원 권선구 당수동)씨는 미혼이다. 20여년간은 기타 연주자로, 그 뒤 10년간은 기타 제작자로 살고 있는 그에게 기타는 이처럼 평생의 동반자다.
그가 기타를 처음 잡은 것은 초등학교 때. 군대에 간 형이 벽에 걸어둔 포크기타에 손을 대면서였다. 그렇게 기타에 홀려 포크기타를 혼자 터득했다. 그러다 그 뒤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선율에 영혼을 빼앗겨 클래식기타에 입문했고, 1982년 단독 콘서트를 열 만큼 실력 있는 연주자가 됐다.
하지만 기타에 심취할수록 기타에 대한 갈증은 더 커졌다. 기타리스트에게 ‘좋은 기타’는 채워지지 않는 집착의 대상이다.
“바이올린은 수백 년의 세월을 버틴 명기도 많지만 기타는 수명이 길어야 20년밖에 안 됩니다. 같은 사람이 만든 기타라도 음쇄의 위치, 지판 목의 두께 등에 따라 소리가 제각각이고요.”
기타는 멜로디와 반주를 동시에 연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은 오케스트라’라 불릴 만큼 악기로서의 완결성을 갖췄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구조적 불완전성을 함께 타고났다.
어릴 적부터 나무로 뭔가를 만들기 좋아했던 그는 92년 미국으로 이민간 후배에게서 기타 제조법 영문책자를 선물받아 이를 참고로 직접 기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생계수단이던 기타학원도 접고 목수의 길을 택했다. 자신을 매혹시킨 기타 소리의 근원을 파헤치자는 욕구 때문이었다.
한 대의 기타를 만드는 데 최소한 한 달이 걸린다. 그렇게 공들여 만들어도 성에 차지 않으면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그러다 보니 1년에 예닐곱 대밖에 만들지 못한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의 원목 수제 기타는 지금 300만원대를 호가한다. 물론 대당 3000만원씩 한다는 ‘로드리게스’나 골동품의 경지에 올라 2억원을 호가한다는 ‘이그나시오 플레타’에 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 최대 기타 제작국이면서도 변변한 명품 하나 없는 한국의 현실이기에 그의 고군분투가 돋보이는 것이다.
“기타도 만드는 사람의 생김새를 닮아간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제 기타 소리를 듣고 ‘아, 아무개의 기타구나’란 말을 들을 만큼 고른 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결국 사람과 악기가 하나라는 깨달음. 문득 그가 살고 있는 풍경을 보면 그 깨달음이 헛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 들어선 아파트촌으로 포위된 곳에 남은 허름한 한옥. 평생 그 집에서만 살아왔다는 그는 가끔 두 마리 검둥개를 청중삼아 직접 제작한 기타를 퉁기며 산다.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삼아 살았다는 중국 송대의 시인 임포(林浦)의 ‘매처학자(梅妻鶴子)’ 고사가 따로 없는 풍경이다.
수원〓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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