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비논리적 언어와 행동…이윤택 연출 '수업'

  • 입력 2002년 11월 5일 19시 16분


교수(한갑수 분)와 학생(류진 분)은 비논리적인 대화와 행위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고발한다./사진제공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교수(한갑수 분)와 학생(류진 분)은 비논리적인 대화와 행위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고발한다./사진제공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단어 하나 고치지 않고 대본 그대로 연출하기로 했다”는 연출가 이윤택의 약속은 그대로 지켜졌다. 정확한 대사의 전달은 하나의 교과서와 같다.

“극의 진전에 따라 학생의 동작이나 발랄한 리듬은 점차로 상실돼 가고… 교수는 차츰 공격적 지배적이 돼 간다”는 외젠 이오네스코의 지문도 충실히 수행됐다. 그렇다고 연극이 희곡과 똑같을 수는 없다. 이오네스코의 희곡은 무대 위에서 ‘정확히’ 새로운 연극으로 탄생했다.

이는 ‘연출가 중심’에서 ‘배우 중심’으로 연출기법을 변화시켜 보겠다던 이윤택씨 약속이 성실하게 지켜진 결과이기도 하다. 교수 역의 한갑수씨는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어리숙한 모습으로 나와서 파시즘적 광기를 품은 히틀러로 변해갔고, 학생 역을 맡은 류진씨는 사교성 있는 아가씨로 등장했다가 교수의 억압적 교육에 시들어갔다.

‘교육자의 도덕적 모범과 논리적 교육을 통해 피교육자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추게 된다’는 것은 하나의 ‘이상’이다. 하지만 현실의 교육 과정에서는 기성 사회의 가치관과 위선적 위압에 눌려 창의력을 잃고 단편적 실용적인 지식에 매몰된 학생들이 양산되곤 한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조리 있는 언어와 동작을 택할 필요는 없다. 아니, 오히려 비논리적인 언어와 행위를 통해 불합리한 현실을 직접 느끼도록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 모른다. 부조리극의 대가인 외젠 이오네스코가 택한 방법은 바로 이것이었다. 합리성에 의해 포장돼 있던 현실의 ‘부조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현실을 되돌아본다.

실험적인 창작극을 시도해 왔던 이윤택씨는 작년의 화제작 ‘시골선비 조남명’ 이후, 세계적 명작을 택해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의 연기력 향상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이는 또 한편으로 관객들의 안목을 넓히는 기회도 제공한다. 관객들도 이를 원하고 있었음은 극장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문예진흥원 예술극장과 우리극연구소가 공동기획한 ‘고전의 연극성을 찾아서’의 첫 작품이었던 안톤 체홉의 ‘세 자매’(윤광진 연출)가 지난 달 선보여 성황을 이루었고, 두 번째 작품인 ‘수업’도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관객들은 19일 막이 오르는 세 번째 작품(이윤택의 ‘오이디푸스’·소포클레스 원작)도 기다리고 있다.

10일까지. 평일 7시반, 토일 4시 7시반. 문예진흥원 학전블루 소극장. 02-763-1268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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