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갤러리 '미국현대사진전'…신디 셔먼등 40명 참가

  • 입력 2002년 11월 5일 19시 12분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는 인테리어가 아니다. 사진제목은 ‘침대가 있는 감옥’./사진제공 호암갤러리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는 인테리어가 아니다. 사진제목은 ‘침대가 있는 감옥’./사진제공 호암갤러리
요즘 서울 호암 갤러리에서는 ‘미국현대 사진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25일 개막한 뒤 매일 500여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몰려 3일 현재 5000여명에 달한다. 이런 추세라면 폐막일인 2월2일까지 5만여명 가량 몰릴 것이라는 것이 갤러리측 추산. 단순히 기계가 만들어 낸 이미지를 넘어 이제 회화의 한 분야로까지 인식되는 사진 예술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에 주최측도 놀랄 정도다.

이번 전시는 미국 서부 대표 미술관으로 1만2000여점의 사진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SFMOMA)과 공동 기획한 행사.

70년대 컬러 사진의 장을 열었던 윌리엄 이글스턴, 새로운 개념의 풍경사진을 보여 준 빌 오웬스, 80년대 포스트모던 사진의 대표주자 신디 셔먼을 비롯해 90년대 필립-로카 디 코르시아, 데이빗 레빈탈에 이르는 현대 사진등 작가 40명의 작품 113점을 통해 현대 예술의 중요한 흐름을 조망할 수 있다.

영국 작가 존 코플란즈가 60대 자신의 몸을 직접 찍은 자화상 ‘발을 잡고 있는 손’.(왼쪽)
빌 오웬즈의 ‘우리는 행복하다’. 작위적인 연출과 어색한 미소를 통해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풍자하고 있다.

사진은 속성상 놀라운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 왔지만 그 차가움 한 켠에는 따뜻한 피를 가진 사진 작가들의 영혼에 대한 갈증도 무겁게 드리워져 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을 ‘만들어’ 내거나 아예 있을 수 없는 이미지들을 창조하거나, 혹은 기존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등의 갖은 방법을 통해 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다양한 실험들을 해왔다. 이번 전시는 ‘현실(The Real)’,‘정체성(identity)’,‘일상(The Domestic)’이라는 이름 아래 작가들의 실험들이 선보인다.

이중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부스는 ‘정체성’. 작가들은 다양한 자화상의 모양을 통해 대중매체나 광고에 의해 비슷하게 만들어진 우리들의 실제 모습을 다소 충격적인 방식으로 깨우쳐준다.

회사원 허영아씨(28)는 “주름살과 보기 싫은 털이 가득한 손, 발, 배, 등 같은 신체의 일부를 클로즈업 해 찍은 존 코플란즈의 ‘자화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며 “예순이 넘은 작가의 실제 몸을 찍었다고 하는데 그의 사진을 보면 ‘늙음은 추하다’는 것은 그저 하나의 문화적 관점일 뿐이라는 조롱이 담겨있는 것 같다”는 평을 했다.

‘현실’이라는 주제에 묶인 작품들은 사진이 찍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원본을 복제하기도 하고 상황을 만들어 내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모든 사진은 곧 주관성, 개입,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위한 작가의 현실도용’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격자무늬 창으로 쏟아져 들어 오는 눈부신 햇살아래 깔끔한 두 개의 침대. 요즘 인기있는 미니멀니즘 인테리어를 연상했지만 제목은 ‘침대가 있는 감옥’(제임스 케스비어 작)이다. 이것은 실제 공간이 아니라 모형이다. 감옥 병원 보호소같은 공공기관들의 권력을 역설하려 했다는 것이 작가의 변.

‘일상’편에서는 지난 30년간 많은 변화를 경험한 미국의 가정들이 등장한다. 옛날 이웃끼리 파티를 열었던 공동체는 파괴되고 핵분열로 쪼개진 가정의 일상이 나온다. 환경파괴, 계산만이 존재하는 인간관계, 현대인의 고립 등이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깔끔하고 넓은 주방을 무대로 젖먹이 아이에게 우유를 떠 넣어 주는 여자 옆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이 사진의 제목은 ‘우리는 행복하다’(빌 오웬스). 자세히 보면 주인공들의 미소가 영 불편하다. 결국 작가가 포착한 것은 중산층의 안온함이 아니라, 자기 만족에 대한 비난이었던 것이다. 02-750-7818.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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