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목들의 문향 바람타고 오네"…이어령-고은전집 발간

  • 입력 2002년 10월 24일 18시 06분


이어령씨./사진제공 GO KOREA
이어령씨./사진제공 GO KOREA
《문학평론가 이어령씨와 시인 고은씨의 전집이 나란히 나온다. 두 사람은 ‘글’에 있어서나 ‘말’에 있어서나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우리 문학의 거목들. 무엇보다 이들의 전집은 동 시대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의 문학적 편력과 미학적 관점을 한 눈에 비교해볼 수 있는 저작물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두 사람 모두 아직도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 30여권이 넘는 이들의 전집은 ‘종착역’이 아닌 ‘중간 기착지’ 쯤 되는 셈이다. 》

■[이어령전집 1차분 출간]"우리시대가 가는것 같아 슬퍼"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손꼽히는 이어령(68·전 이화여대 석좌교수)씨의 글은 모두 30여권으로 구성된 ‘이어령 라이브러리’(문학사상사)에 모인다. 전통적인 한국사회에 대한 통찰력있는 지적과 매서운 비판으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발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

전집 1차분으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말로 찾는 열두 달’‘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등 3권이 최근 나왔다. 이를 시작으로 매달 3권씩 10개월간 발행할 예정.

이씨는 전집 발간에 대해 “최근 ‘우리 시대’가 가고 있다는 슬픔 같은 것이 들곤 한다. 불우하고 처절한 시대를 지나 인생을 즐겁게 향유하는 요즘에 이르렀지만, 아무리 미래가 아름다워도 죽기 전에 한 시대의 흐름을, 이미 죽어버린 우리 시대를 인정한다는 것이 솔직히 섭섭하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1956년 24세의 이어령은 황순원 서정주 김동리 등을 예리한 필봉으로 비판한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해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기존의 틀을 따르지 않는 문학평론가, 문예지‘문학사상’의 초대 주간, 대학교수, 88올림픽을 치렀던 초대 문화부 장관 등을 지내며 삶의 다양한 궤적을 보여줬다.

‘흙 속에…’는 1962년에 일간지에 연재했던 에세이로 한국의 건축 의상 식습관 생활 양식을 분석해 낸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발간된 ‘흙 속에…’는 4번째 개정증보판. 40년 전과 달라진 저자의 시각을 소개하기 위해 문답 형식으로 구성된 100여쪽의 글이 추가됐다.

과거에 비해 보다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말로 찾는…’에는 문예지 ‘문학사상’에 실었던 권두언을 비롯해 문학에 관한 글이 실렸다. ‘하나의 나뭇잎이…’에는 자서전적인 성격의 에세이가 담겼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고은씨./사진제공 김영사

■[고은전집 38권 발간]"전집은 정상이 아닌 능선일뿐"

김영사를 통해 이달 말 발간될 ‘고은 전집’(전 38권)에는 시인 고은(69)이 44년 동안 걸어온 ‘문학의 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전집은 고씨가 1958년 시 ‘폐결핵’으로 등단한 뒤 지금까지 써온 시(14권) 산문(7권) 자전(3권) 소설(7권) 기행(1권) 평론과 연구(5권)로 구성됐다. 원고지 약 12만장의 분량으로 각 권을 눕혀 쌓으면 약 1m20에 이른다.

24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고씨는 “절망의 연속에서 생겨나는 열정으로 첫걸음을 뗀 이후의 역정이 이제 ‘고은 전집’으로 결집됐다. 전집에 담긴 온갖 말들의 밀림과는 달리 나는 종종 말의 껍질을 벗겨내 말의 잔뼈 도막이나 가시만으로 남아있고 싶다”고 발간 소회를 밝혔다. 그는 또 “이 전집이 ‘종교’는 아니다. 다음 경계로 넘어가는 능선일 뿐이다. 내 허영은 과거보다 미래가 더 풍부하다”고 말했다.

125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을 집대성한 이 전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를 ‘국어’로 알고 자랐던 소년이 모국어를 인식하고 시인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번 전집에 수록한 시의 일부를 개작한 그는 “시의 심장은 손대지 않았고, 팔과 다리를 고쳤다”면서 “어제의 시는 불행하고 과거는 늘 나를 배반한다. 나의 문학적 허영은 오늘 쓴 시가 가장 좋다는 것”이라고 ‘영원한 현역’임을 자부했다.

승려에서 시인으로, 또 시대적 격변기에는 치열한 운동가로 다채로운 면면을 보여온 고씨에 대해 한 시인은 “아마도 우리 당대에 가장 이름붙이기 어려운, 이름붙일 수 없는, 명명 불가능한 에너지의 한 현상”이라고 언급했다.

전집은 500질 한정출판되며, 각권 5만원씩으로 1질은 190만원.

30일 오후 6시반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전집 출간 기념회가 열린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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