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왜관에 개인문학관 연 구상 선생

  • 입력 2002년 10월 4일 18시 10분


새와 꽃, 특히 잡초를 좋아한다는 원로시인 구상

새와 꽃, 특히 잡초를 좋아한다는 원로시인 구상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시인 구상(具常·83) 선생이 6·25 전쟁 이후, 20여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선생은 이곳에 ‘관수재(觀水齎)’를 짓고 ‘강’ ‘그리스도 폴의 강’ 등의 연작시를 썼다. ‘관수재’는 ‘물을 보며 마음을 씻는다’는 ‘관수세심(觀水洗心)’에서 따온 당호인데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이 곳에서 그는 강물에 시를 우려냈던가 보다. 강은 그의 ‘회심(回心)의 일터’였으니.

4일 오전 일찍부터 왜관리 마을은 분주하고 들떠 있었다. 이날 관수재를 복원하고 구상문학관도 개관하기 때문이다. 개관을 알리는 플래카드도 걸린 문학관 주변에선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꽃을 피웠다. 특유의 환한 웃음으로 문학관을 찾은 이들을 맞아 줄 선생의 모습이 정작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내가 없다▼

문학관의 개관을 앞두고 구상 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은 “몸 상태가 좋으면 오후에 잠시 보자”며 다음 날 오전 일찍 다시 한 번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은행 열매가 가을 바람을 타고 땅을 딛는 2일 오후. 31년째 여의도를 지키고 있는 선생의 현관문 옆, ‘관수재’라는 현판이 낯선 이를 맞아 준다.

“소장하고 있던 책 2만2000여권과 소장품 200여점을 문학관으로 내려보내 살림이 단촐해졌다”는 그의 집 거실에는 개관 축하화분 및 꽃바구니 몇 개가 한 켠에 놓여 있었다.

“전봉건이랑 중광네에서 문학관을 연다고 꽃을 보내왔지 뭐야. 허허. 정작 나는 몸이 안 좋아서 가보지도 못하는데…. 사실 문학관을 짓겠다고 했을 때, 몇 번이나 거절했는지 몰라. 주변 사람들에게 늘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죽더라도 내 이름 딴 문학상 같은 거 만들지 말라고 하지. 살아서도 명리 추구하지 않았는데…”

구상은 “오늘 속의 영원, 영원 속의 오늘’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아래사진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에 개관한 구상문학관.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시간의 무덤▼

1998년 세상을 떠난 중광스님의 집에서 꽃을 보내왔다기에, 친구들의 ‘부재(不在)’가 적적하지 않은지 물었다. ‘기인’들과 친분이 깊었던 선생은 천재 화가 이중섭, 시인 공초 오상순, 아동문학가 마해송, 걸레스님 중광 등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심심하지. 이 사회에는 모두 규격품만 있으니까 재미가 없어. 이 ‘기인일사’들은 재미없는 사회에 재미와 청량감을 주곤 했지. 이들이 나서서 다니고 해야 ‘살수차’ 역할도 하는데….”

선생의 왜관 시절, 집에 함께 기거했었던 천재화가 이중섭이 당시 그린 그림이 ‘K씨의 가족’. 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의 ‘서귀포 풍경’을 호암아트홀에 넘기고 그 돈을 종교단체에 기부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물었으나 그는 “내가 죽어서야 밝혀질 얘기”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신비(神秘)의 샘인 하루▼

2번에 걸친 폐수술로 폐활량이 1500cc에 불과한 선생은 얘기 도중 가쁜 숨을 고르곤 했다. 잠시 뒤 그는 자신의 ‘시’에 대한 얘기를 이어 갔다.

“심지어 전쟁에도 당위가 있고, 전략적 가치가 있어.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따지지 못해. 나는 내 예명처럼(그의 본명은 ‘상준’이다) 인류의 보편성, 보편적인 선악의 문제, 존재론적, 형이상학적인 차원을 이야기하지.”

그는 지난해 10월 발표했던 ‘오늘’이라는 시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며, “내 사상의 근원이 되는 시”라고 했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

“오늘도 영원의 한 과정이자 부분이고 한 모습이지. 우리의 궁극적인 완성이 어떤 상태로 이뤄질지는 ‘신비’에 속하는 것이 아니겠어.”

▼그 단순하고 소박한 수행(修行)▼

건축가 김석철씨의 설계를 바탕으로 현대식 스틸 하우스(Steel House) 공법을 통해 지어졌다는 구상문학관은 돌아보다, 선생이 들려줬던 ‘그리스도 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5세기 스페인 사람인 폴은 본래 깡패였지만 강가에 사는 은자(隱者)를 만난 뒤, 사람들을 업어 강을 건네주다 결국 사랑의 화신인 예수를 만났다. 선생 역시 일생동안 강을 일터삼아 등에 진 시를 끊임없이 세상에 건네 준 것은 아니었을까.

4일, 복원된 ‘관수재’ 옆에서 두 중년 남성이 방 안에 놓인 ‘K씨의 가족’(영인본)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자전거에 타고 있는 아이가 성이 아니가.” “그래.” “자전거를 사주고 싶은데 돈이 없어가 그림으로 대신 했다카재.” “그래, 그 선생이 어데 돈이 있었나. 아버님(구상 선생) 편찮으실 때도 돈이 없어가 천도복숭아 그림을 그려드h다 카든데.”

왜관리에 살고 있다는 그들은 구상 선생의 첫째 아들(구홍)의 친구 이길상씨(55)와 둘째 아들(구성)의 친구 이정덕씨(52)였다. 선생의 두 아들은 지병으로 오래 전 세상을 떴다.

선생 가족의 왜관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들은 대나무숲이 우거지고 잡초가 무성했던 시절을 한참 얘기했다.

“요즘 아이들이 아나. 왜관에 있는 순심학교 교가도 구 선생님이 만든긴데.”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