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한국화단 대표 원로작가 2人 작품세계를 만난다

  • 입력 2002년 8월 27일 18시 20분


유영국의 1980년대 추상 ‘Work’.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유영국의 1980년대 추상 ‘Work’.사진제공 가나아트센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유영국(86)과 물방울 작가 김창열(73).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두 원로 작가가 개인전을 연다. 유영국은 30일부터 10월6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김창열은 29일부터 9월11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영덕화랑. 이들은 추상화와 물방울 그림의 외길을 걸어오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로 한국 미술을 풍요롭게 해온 작가다.》

■추상회화 선구자 유영국展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추상 회화의 선구자이자 대가다.

화단의 유행에서 벗어나 70년 넘게 추상화 하나만을 고집해온 작가. 추상화를 위해 서울대 미대 교수직까지 포기할 만큼 작가 정신이 대단하다.

이번 전시는 그의 미술 역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대표작 60여점을 선보이는 일종의 회고전이다.

1930년대부터 50년대 초반까지의 절대 추상, 50년대 후반 이후의 서정 추상, 70년대 이후의 기하 추상으로 나뉘어 꾸며진다.

초기 절대 추상 코너에선 그가 1930년대 후반∼40년대 초반 제작한 추상화 3점을 복원한 작품 등 광복 이전까지의 미공개작 17점을 선보인다. 유영국의 초기 미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다.

서정 추상 코너에선 50년대 후반 이후 산을 추상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서구적 추상에 한국적 미감을 조화시킨 추상화들이 전시된다. 이 무렵 유영국은 거대하고도 견고한 산을 해체한 뒤 다시 추상화로 재구성했다. 산과 나무 길 등의 구체적인 형상을 하나 둘 없애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해 새롭고 독창적인 미학을 창출했다. 그것은 건조한 추상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추상, 우주와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추상이었다. 그래서 시적인 아름다움과 경쾌한 울림이 가득하다. 차갑고 논리적인 구성과 감각적이고 강렬한 색채의 대비가 돋보인다.

기하 추상 코너에선 1970년대 이후 더욱 엄격해진 기하학적 추상화를 만날 수 있다. 힘있는 선, 경쾌하게 분할된 화면, 순도 높은 색조…. 대상을 철저하게 단순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대상의 본질에 접근한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유영국의 작품을 한국 추상미술의 기원이자 정점이라고 부른다.

현재 작가는 건강이 좋지 않다. 그래서 30일 개막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9월14일 오후 2시엔 ‘유영국, 추상미술 해석의 쟁점’을 주제로 한 세미나도 열린다. 02-720-1020

김창열의 2002년 물방울그림 ‘회귀’.사진제공 박영덕화랑

■물방울 작가 김창열 개인展

잠시 머물다 사라져버리는 물방울. 김창열은 그 찰나의 물방울을 화폭에 담아 거기에 영원을 부여해 온 작가다.

이번 개인전엔 2002년작 물방울 그림 20여점이 선보인다. 전시에선 1990년대 이후 천자문을 배경으로 한 물방울 그림인 ‘회귀(回歸)’ 연작이 주를 이룬다. 새롭게 시도한 작품들도 물론 선보인다. 마대 위에 아무 색도 칠하지 않고 물방울만 그린 작품, 두텁고 진한 색의 유화 위에 물방울을 촘촘히 그려넣은 작품이다. 그의 물방울은 실물로 볼 때 그 감동이 더하다. 가까이서 보면 두터운 붓자국만 보이지만 한 발 두 발 뒤로 물러날수록 물방울은 조금씩 조금씩 더 영롱하게 빛난다. 어찌 보면 하찮은 물방울이지만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잘 안보이는 것을 보게 하고 생각하지 않던 것을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물방울 속에서 모든 잡념을 용해시켜 투명하게 무(無)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건 자아의 소멸이다”는 작가의 말이 실감난다. 김창열의 투명한 물방울을 감상하는 것은 그래서 일종의 명상이다. 그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그윽한 세계다.

너무 변하지 않고 물방울만 그린다는 지적에 대해 작가는 요지부동이다.

“재주가 없어서인지 물방울 하나만 붙들고 씨름하는 것도 벅찬 일이다. 끝까지 물방울 하나만 파고 들어 영혼을 건드리고 싶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물방울은 연꽃에 달려있는 물방울이라고 한다. 작가는 또한 축구광이기도 하다. 사각의 경기장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공의 긴장감이 축구의 매력이라고 하는 김창열. 그에겐 축구장이 캔버스이고, 축구공은 물방울이 아닐까.

그는 최근엔 창호 CF에 출연하고 있다. 창에 비치는 빗물의 이미지가 그의 물방울 그림을 연상시킨다. 김창열은 2004년 1월 프랑스 파리의 국립주드폼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한국인으로서는 1997년 이우환에 이어 두 번째다. 02-544-8483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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