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탐험 윤명철교수 ˝풍랑과 死鬪 20년…역사를 보았다˝

  • 입력 2002년 8월 12일 17시 45분


뗏목 하나에 의지해 한중일 고대인들의 문화 항로를 탐험해온 사학자 윤명철 교수. 최근에도 한달간 실크로드와 고구려유적을 답사하고 돌아와 수염이 더부룩하다. 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뗏목 하나에 의지해 한중일 고대인들의 문화 항로를 탐험해온 사학자 윤명철 교수. 최근에도 한달간 실크로드와 고구려유적을 답사하고 돌아와 수염이 더부룩하다. 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1982년 8월, 동국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28세의 한 젊은 사학도는 야심찬 탐험을 시작했다. 1500여년전 한일 고대항로를 체험하기 위한 대한해협 뗏목 횡단. 거제도를 출발한 그는 33시간만에 대한해협을 건너 쓰시마(對馬島)를 목전에 두었다. 그러나 뗏목이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숨가쁘게 몰려오는 죽음 앞에서 뗏목을 고집할 수 없었다. 구조 연막탄을 떠뜨렸고 천만다행으로 지나가는 유조선에 의해 구조됐다.

1년 뒤인 83년8월 그는 44시간의 사투 끝에 보란 듯 대한해협 뗏목 탐험에 성공했다. 국내 최초였다.

목숨을 건 바다 탐험은 계속됐다. 1986년 울릉도 독도간 뗏목 탐험 실패, 1987년 울릉도 독도간 뗏목 탐험 성공, 1996년 한중 고대항로 뗏목 탐험 실패, 1997년 중국 저장(折江)성에서 한반도 소흑산도 거쳐 인천까지 한중 고대항로 뗏목 탐험 성공.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역사의 현장을 추적해온 그 젊은이는 이제 48세의 중견 사학자가 되었다. 한국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리는 탐험가 겸 고대사학자인 윤명철 동국대교수(48·고구려해양교섭사).

“사료엔 모두 결과만 적혀 있습니다. 저의 탐험은 역사 속의 과정을 살펴보자는 것이죠. 현장을 추적하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입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죠. 저는 그래서 역사학을 인간학이라고 정의합니다.”

말이 쉬워 바다탐험이지 그것은 늘 죽음과의 싸움이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동아지중해호’ 뗏목을 타고 대원 4명과 함께 24일간 1300㎞ 황해 횡단에 성공했던 1997년 여름. 그 바닷길은 백제인과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등 신라인들이 활동했던 해상교통로였다. 저장성 저우산(舟山)에서 흑산도 최남단까지 17일간 800㎞를, 흑산도에서 인천까지 7일간 500㎞를 항해했다.

“1300㎞ 내내 죽을 고비의 연속이었습니다. 파고가 5∼6m로 높아지고 쌍돛대가 찢어지고 부러지고…. 길이 12m 넓이 4.5m의 거대한 뗏목도 바다에서는 가랑잎에 불과합니다. 밤에 비가 올 때는 추위 때문에 차라리 옷을 벗고 몸을 자일로 묶어야 합니다. 영화를 보면 바다가 잔잔할 때, 뗏목에 누워 사색에 잠기는 모습이 나오는데 사실과 다르죠. 뗏목 점검하고 날씨 체크해야죠, 1시간마다 항해일지 적어야죠, 쉴 틈이 없습니다. 부상을 당하면 정말 처참합니다. 대원 한 명이 손가락 부상을 당했는데 치료 방법이 없어 손가락이 썩어갔습니다. 제 몸도 온통 상처투성였지요. 흑산도에 닿을 때는 폭풍을 만나 12시간 만에 겨우 접안했습니다. ”

그러나 그는 전혀 두렵지 않다. “뗏목을 타면 내내 급박한 상황이고 급박하면 두려움을 느낄 새가 없다. 두려움은 관념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28년전 동국대 사학과 입학 때부터 시작된 윤교수의 탐험 인생. 국내의 강 동굴 탐험이 수십차례. 1995년엔 고구려인들의 기마(騎馬)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43일동안 말을 타고 중국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기도 했다. 그동안 일본 답사는 30여차례, 중국 답사는 20여차례나 다녀왔다.

이같은 탐험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 고대 해양사와 고구려 해양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한중일 동북아시아의 해상 문화 교류 루트를 추적해 해양사의 시각으로 한국 고대사를 새롭게 연구하는 것이다. 답사와 연구를 토대로 ‘말타고 고구려가다’ ‘바다는 문화의 고속도로였다’ ‘고구려 산성과 해양방어체제’ ‘장보고시대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를 출간했다. 곧 ‘한민족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에’‘고구려 해양활동사’도 나온다.

바다를 탐험하면서 ‘명선일체(命禪一體)’를 터득했다는 윤교수. 그의 탐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 10월엔 중국 산둥(山東)반도를 출발, 한반도 서남해를 거쳐 일본 쓰시마 큐슈(九州)지역까지 한달 예정으로 한중일 고대문화 항로 대탐험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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