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클래식 시장에 '록風'이 분다

  • 입력 2002년 8월 11일 17시 41분


8인조 일렉트릭 악단 ‘더 플래닛’이 5일 서울 힐튼호텔 클럽 파라오에서 강한 비트를 선보이며 연주를 펼쳐보이고 있다.(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8인조 일렉트릭 악단 ‘더 플래닛’이 5일 서울 힐튼호텔 클럽 파라오에서 강한 비트를 선보이며 연주를 펼쳐보이고 있다.(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최근 서울 힐튼호텔 클럽 ‘파라오’에는 색다른 손님들이 찾아왔다. 음반사 EMI 클래식팀이 남녀 8인조 밴드 ‘더 플래닛’ 홍보 행사를 가진 것.

등이 터진 상의에 딱 붙는 흰색 바지를 입은 플루티스트, 흰색 초미니 스커트 차림의 오보이스트, 옆이 훤히 트인 스커트 차림의 기타리스트 등 튀는 차림의 늘씬한 남녀 연주자 8명이 클래식 명곡을 편곡한 ‘로드리고’ ‘카르멘 카프리스’ 등의 연주곡과 일렉트릭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의 히트곡으로 알려진 ‘콘트라단차’ 등을 연주했다.

아랫배가 쿵쿵 울릴 정도의 강한 비트와 머리 다리를 흔들어대는 파격적인 무대 매너는 록 음악 공연장인지 혼동될 정도. 그러나 오보에와 플루트가 가세한 이색적인 편성 때문에 클래식의 분위기와 요즘 ‘뜨고’ 있는 셀틱뮤직 (영국 북부 민속음악)의 분위기도 강하게 느껴졌다. 8명의 연주자는 모두 영국 유수의 음악학교를 나온 클래식 전공자들. 이들이 지어내는 음악의 ‘계열’은 메이 또는 4인조 여성 일렉트릭 4중주단인 ‘본드’와 확연히 닮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메이와 본드를 띄워낸 프로듀서 마이크 배트가 마음먹고 만들어낸 팀이었기 때문이다.

‘본드’가 그렇듯이 ‘일렉트릭 클래식 퓨전 3탄’ 역시 철저한 시장조사, 외모를 중시한 연주가 찾아내기, 대자본이 투입된 편곡과 합숙훈련, 마케팅 전략이 철저하게 조합된 ‘음반계 블록버스터 전략’의 산물이다.

“이런 음악 자체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색다르고 재미있으니까.”

옆자리에 앉은 한 음반전문지 기자는 고민하는 빛이 역력했다.

“문제는 클래식 음반사들이 이런 전략에만 집중한 나머지 ‘정통’ 레퍼토리를 도외시한다는 데 있는 것 아닐까요?” 기자의 말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90년대 중반 클래식 음반시장이 포화상태를 맞은 뒤 전 세계에서 관현악이나 실내악 등 ‘정통’레퍼토리 신보 발매와 녹음은 이전의 10%선으로 위축됐다. 외국 직배사의 ‘원격조종’을 받고 있는 한국 시장도 이런 ‘블록버스터’ 전략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기존의 ‘비(非) 클래식층’을 고객으로 만든 점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클래식 애호가들은 날로 물줄기가 말라가는 신보 레퍼토리에 짜증을 내고 있다.

“한국 출신의 유명 성악가가 뮤지컬이나 팝송을 섞어 내면 수십만장이 팔립니다. 그러나 베를린 필 새 상임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의 교향곡 음반을 수입할 경우 1만 단위를 넘어서면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한 음반사 관계자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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