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청바지'디젤'-게이전용 콜택시 '프리덤카'

  • 입력 2002년 7월 11일 18시 20분


스웨덴 청바지 디젤 광고
스웨덴 청바지 디젤 광고
미켈란젤로와 미셸 푸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위대한 상상력의 소유자? 인류사에 족적을 남긴 예술가와 철학자? 이들은 게이였다.

지금까지 게이는 변태 또는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종자 등으로 인식되어왔다. 특히 20세기의 천형이라 불리는 에이즈의 저주가 주로 동성애자에게 퍼부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그들을 더욱 삐딱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 이탈리아의 극우 정치가인 피에로 부스카롤리는 에이즈의 위험과 공포를 근절하기 위해 동성애자들을 강제수용소에 수감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협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세상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는 뜻이다. 불과 10여년 전 이야기다.

이는 예언적 재능을 가진 인간으로 생각되었던 광인들을 병원에 감금하여 정신병자 취급했던 17세기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푸코가 간파해냈듯 이성이 광인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기 위한 권력의 담론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푸코 역시 동성애자라는 마이너리티였기에 그같은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정상’이라는 완장을 차게 되면 그에 반하는 모든 것은 그것의 특성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으로 퇴출되기 마련이다. 푸코는 그러한 묻혀 버린 비정상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을 지식의 고고학이라 불렀다.

동성애는 비정상인가? 특히 레즈비언보다 더욱 강한 혐오의 눈총을 받고 있는 게이는 아직도 사회의 편견의 그늘에서 떳떳하게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13자리의 주민등록 번호를 가지고 있으며 투표권을 행사하는 엄연한 사회의 일원이다.

영국 콜택시 프리덤 카 광고

모두가 그들의 존재를 묻어 두려 할 때 광고가 그들의 존재를 발굴해 내고 있다. 뭍의 냄새만 맡아도 이성을 잃는다는 수병들. 육지에서 그들이 연인들과 벌이는 육체의 향연은 그들의 몸에 배어 있는 바다 냄새만큼 길고 깊다. 그런데 스웨덴의 청바지 브랜드인 디젤 광고에선 남자 수병 둘이 뜨거운 입맞춤을 하고 있다. 디젤 특유의 너스레가 돋보이는 이 광고는 유럽의 내로라 하는 광고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디젤 광고가 전복적 상상력을 통해 게이의 당당함을 과장되게 표현했다면, 그래서 이성간의 사랑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보란 듯이 한방 먹이고 있다면 영국 런던의 비엠피 디디비 니덤(BMP DDB Needham)에서 제작한 프리덤 카(Freedom Car) 광고는 게이의 실체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프리덤 카는 게이 전용 콜택시이다. 아마도 그들의 은밀한 심적, 육체적 커뮤니케이션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해주기 위해 마련된 차일 것이다. 광고에는 영화 ‘프리실라’에서처럼 요란하게 치장한 남자 둘이 나란히 택시에 앉아 마치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즉석 기념사진을 찍듯 한 컷을 남겼다. 그 아래에는 ‘제이슨과 가비가 프리덤 카를 타고 제이슨의 엄마를 만나러 간다’라는 카피가 적혀 있다. 이 광고는 꾸며진 모델이 아니라 실제 게이의 일상 에피소드를 여과 없이 담아내어 그들의 명명백백한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한편에선 남자 애인을 엄마에게 소개시키러 가는 게이 커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게이를 강제 수용소에 감금시키려는 음모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지구촌의 현실이다.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이들의 존재를 광고가 부각시키고 있다. 상업적 의도에서 촉발된 것이지만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무대로 나오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광고는 게이의 현실을 복원해낸다. 먼 옛날의 잊혀진 역사도 아닌, 바로 지금 망각을 강요당하는 현재 진행의 역사를 복원해내는 아이러니. 광고의 고고학을 우리는 읽고 있다.김홍탁 광고 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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