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세종로, 한국 건축사의 파노라마

  • 입력 2002년 6월 27일 16시 11분


광화문 거리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건축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거리다.

세종로는 조선의 건국 공신으로 한양의 ‘도시 계획’을 주도한 정도전이 설계한 주작대로(朱雀大路). 건축 전문가들은 한국의 심장부인 세종로에서 건축 양식 사조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물을 찾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 한다. 심지어 “문화가 솔직하게 빠져 있다” “건물들끼리 어울리게 하려는 의지가 없다”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조선 초기 목조 건축양식부터 21세기 하이테크풍의 인텔리전트 빌딩까지 중첩된 시간을 아우르는 공간은 세종로밖에 없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글〓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도움말〓김정동 목원대(건축도시공학부), 서현 한양대(건축디자인대학원), 임석재 이화여대교수(건축학과)·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광화문(조선 태조 4년 1395년 창건)

경복궁의 정문으로 목조 건축물의 정답을 보여준다. 2층 다락집이 나무로 지어진 부분인데 나무를 깎고 다듬어 기둥을 세우고 보를 지르고 서까래를 얹은 품이 신묘한 발명품 같다는게 건축가들의 평가다. 아래층엔 홍예문이 3개 있다. 가운데 문으로는 왕과 왕비, 동쪽과 서쪽문은 각각 문신과 무신이 드나들었다. 지금의 광화문은 1968년 철근 콘크리트와 나무로 복원한 것.

▼미대사관과 중앙청사(1961,70년 준공)

문화관광부와 주한 미국 대사관은 ‘먹고 살기 바쁠 때’ 꼭 필요한 기능만 충족하도록 지어진 쌍둥이 건물. 층층이 튀어나온 얇은 슬래브는 차양처럼 밖으로 두드러져 나와 햇볕을 막아주는 동시에 횡적인 축을 강조함으로써 건물의 고도가 낮아보이게 한다. 정부중앙청사(1970년 준공)는 장중하고 수직적인 외관이 권위주의적인 관공서 건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세종로의 특성상 건축물의 고도를 제한해야 할 정부가 노른자위 땅에 고층 빌딩을 지어 관(官)이 우선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일민미술관(1926년 준공)

세종로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제강점기 건물이다. 나무 창틀에 세로로 줄을 파놓은 것이 로마시대 관공서 건물의 창틀을 닮았다. 창틀을 둘러싼 화강석이나 창문 위쪽에 새긴 화려한 장식은 르네상스식이다. 일제 하 건축물은 서양의 건축양식을 따른 것이 많았다. 오랫동안 동아일보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사시를 구현해 온 한국언론의 메카이기도 하다.

▼세종문화회관(1978년 준공)

‘우리 것’에 대한 강박과 북한 체제와의 경쟁심이 지배하던 시기에 탄생한 건물. 서구 신전의 장엄한 굵은 기둥에 비천상 등 전통적 요소를 버무렸다. 전통을 모더니즘의 건축 언어로 잘 풀어냈다, 태생이 국수적이고 과시적이라는 등 평가가 엇갈린다. 의전용 차량을 입구에 정차할 수 있도록 건물 앞쪽에 널찍하게 설계된 차도가 건물과 멀리 떨어져 있는 버스 정류장과 대조를 이룬다.

▼교보생명빌딩(1980년 준공)

자본의 힘이 정치적 논리를 이기기 시작할 즈음 들어선 초대형 민간 건물. 구조물이나 창을 건물 벽면과 같은 높이로 평평하게 설계해 2차원적인 면장식을 한 것이 후기 모더니즘적이다. 일본 도쿄의 미국대사관을 설계한 미국인 설계사 시저 펠리가 설계했으나 동양의 건축물임을 감안, 둥근 기둥에 단청을 입혔다. 정문 앞에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를 심어 보행자를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동아미디어센터(2000년 준공)

세종로에 최근래에 지어진 유리 구조물. 유리로 건물을 짓는 것은 첨단 기술을 요하는 것이어서 누가 더 투명한 건물을 짓느냐는 것은 최근 건축계 기술경쟁의 요체다. 유리는 시각적으로 ‘투명성’이라는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특히 1∼4층은 창틀도 끼우지 않고 유리로만 설계해 투명성을 극대화했다. 햇볕을 막기 위해 건물 남쪽과 서쪽에는 로버를 설치, 기능적 요소를 충족함과 동시에 미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동아일보사옥으로 일본 아사히신문, 프랑스 AFP통신, 미국 블룸버그통신 등이 입주해 있는 국제적 미디어빌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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