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강내희/짧은 주말, 긴 주말

  • 입력 2002년 5월 31일 18시 40분


앞으로는 주5일 근무제가 일반화될 모양이다. 최근 보도된 바에 의하면 7월부터 은행의 토요일 근무가 없어진다고 한다. 주5일 근무제는 정부도 찬성하고 있는 터라 토요일 휴무는 공무원 사회, 나아가서 학교에도 확산될 예정이다. 이 변화로 우리가 꾸려 가는 삶의 방식인 문화도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주5일 근무 삶 패턴 바꿔▼

한국인은 그동안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을 유지해 왔다. 우리의 주말은 그래서 너무나 짧고 자유시간도 부족하다. 시간이 없으니 삶의 여유도 있을 리 없다. 한국인이 유난히 술을 많이 마시고, 노래방 출입 등 유흥에 몰두하며,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삶을 사는 것도 시간 부족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음주나 유흥은 스트레스를 단시간에 푸는 방식이 아닌가. 시간이 늘 부족한 사람은 간혹 시간이 생겨도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잘 모른다. 아까운 주말 시간을 잠자기나 TV 시청으로 허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주5일 근무제가 일반화된 삶의 풍경은 어떨까. 훨씬 더 다채로워질 듯싶다. 자유시간이 많아지면 삶에 여유가 생긴다. 혼자서 여행을 즐길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자아 발견을 위한 시간도 만들 수 있다. 자유시간은 남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병든 친구를 문안하거나, 봉사활동을 하고, 시민활동에 참여할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의 모습을 다채롭게 만들 토양으로는 자유시간처럼 소중한 것이 없다.

금요일에 떠나 일요일 밤에 돌아오는 주말여행이 일상화되면 어떨까. 서로 얼굴을 못 봐서 피폐해진 가족관계가 많이 회복될 것이다. 주말여행이 증가하면 관광산업도 발전한다. 관광단지 개발로 인한 자연 훼손의 우려가 없진 않지만, 사람들이 한갓지고 고즈넉한 장소를 선호하면 보존을 유도할 수도 있다. 여행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까지의 돈 쓰기 중심에서 계획을 잘 세워 돈보다는 시간을 쓰는 새로운 여행 방식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주말은 그래서 관람형보다는 참여형 활동을 장려할 것 같다. 한 예로 사회체육 활동의 증가가 예상된다. 한국은 그동안 사회체육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정책 문제도 있지만, 사람들이 워낙 시간이 없었던 탓도 있다. 월드컵 개최로 축구가 관심을 끌게 되어 앞으로 경기장을 찾는 사람이 늘겠지만 스스로 축구를 즐기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농구 야구 배구 등의 분야도 마찬가지다. 국선도 기천무 궁술 태껸 같은 전통 수련법이나 무술을 직접 연마하는 이도 많아질 것이다.

주말의 참여 활동이 스포츠에 한정되리라는 법은 없다. 예술 활동도 늘 것이 분명하다. 주말을 활용해 음악회, 전람회, 시 낭송 등의 행사에 참석하기도 하겠지만 합창단 운영을 하거나 악기 연주, 그림 그리기 등을 직접 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또 하나, 사회 참여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여유시간이 많아지면 환경 가꾸기, 자원봉사, 정책감시 등 시민활동에 더 많은 사람이 나서지 않겠는가. 이런 변화는 시민의 관심과 참여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회단체에 특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5일 근무제는 우리의 삶을 이처럼 크게 바꿀 것이다.

한국은 국내총생산이나 무역수지 규모로 보면 세계 12위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삶의 질은 150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최하위에 속할 만큼 열악하다. 삶의 질이 열악해진 데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물론이요, 최빈국보다 더 긴 노동시간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5일 근무제로 이런 상황이 개선될 것을 기대한다.

▼임시직 이웃도 배려를▼

하지만 우려가 없지는 않다. 긴 주말과 함께 삶의 여유가 골고루 나누어질 것 같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추세가 걱정이다. 국내 비정규직 비율은 ‘외환위기’가 몰아닥치기 전 이미 45%에 이르더니 지금은 60%에 가깝다고 한다. 일용직 임시직에 종사하며 불안정하게 사는 사람들이 반도 더 된다는 말이다.

일자리 보장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긴 주말은 더 큰 불만과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다. 주말의 자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지만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다 못해 증오의 눈으로 바라볼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우울하다. 주말 풍경을 아름답게 가꾸려면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삶의 여유를 누리는 사회가 더 아름다운 사회일 테니까.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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