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군중'저자 美석학 리스먼 타계로 본 현대 대중사회

  • 입력 2002년 5월 14일 18시 47분


11일 사망한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93)은 1950년대 초반부터 고도화하는 미국의 자본주의사회를 지켜보며 현대 대중사회의 변화 양상을 앞서 짚어낸 학자였다.

그는 ‘고독한 군중’(1950)을 비롯해 ‘군중의 모습’(1952), ‘미국인 성격 연구에 대한 몇 가지 관찰’(1952), ‘개인주의 재고찰’(1954), ‘무엇을 위한 풍요인가’(1964), ‘대학교육의 가치와 대중교육’(1970) 등 일련의 저술을 통해 대중사회의 현실을 선구적으로 분석하고 미국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전망을 제기해 왔다.

특히 그를 세계적 석학의 반열에 올려 놓은 대표작 ‘고독한 군중’은 사회사적 맥락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현대 대중사회의 생활양식 변화추이를 명쾌하게 유형화해 낸 역작이었다. 그는 전통사회에서 초기 자본주의를 거쳐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고도화 단계에서 현대인의 행위 유형이 어떻게 변모하는가를 통찰했다.

그에 따르면 전통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전통 추수 경향에 의해 사회의 동질성이 보증되는 ‘전통지향형’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비해 개인의 이동과 자본의 축적 및 산업사회의 확대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어릴 때부터 이런 일련의 목표를 내면화하는 경향에 의해 사회의 동질성이 보증되는 ‘내적 지향형’이 나타난다. 나아가 리스먼은 당시 미국사회에 나타나고 있던 고도 자본주의 시대에는 사회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선호에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사회의 동질성이 보증되는 ‘타인지향형’이 지배적 성향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이 친구나 동료, 매스 미디어 등 타자의 신호에 대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며 그 유통에 참여한다는 것이고, 이는 바로 대중소비사회의 도래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을 쓸 당시에 “타인지향형이 머지 않아 미국 전체에서 주도적 성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이런 유형은 이미 서구사회는 물론 한국사회에서까지도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1980년대의 격렬한 이데올로기 논쟁을 거치며 한국사회에는 대중사회에 대한 리스먼의 관점이 잊혀져 가는 듯했으나, 이미 이런 성향이 지배적 특성이 된 1990년대에 들어서는 장 보드리야르 같은 후기산업사회의 사회이론가를 통해 그의 사상이 계승되고 있다. 리스먼이 말한 ‘타자’는 이제 보드리야르에게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되는 ‘욕망’으로 표현된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욕망을 생산하며 서로가 생산하는 욕망을 지향하고 소비하며 산다는 것이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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