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전문가들이 보는 '노무현 언론 발언' "언론존재근거 부정"

  • 입력 2002년 4월 8일 18시 29분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언론 관련 발언에 대한 공방은 특정 후보의 노선과 언론관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언론의 본질과 법치(法治)에 관한 문제다.

이와 관련, 언론학자들과 법조계 인사들은 특히 노 후보의 발언 중 △동아일보를 폐간시키겠다 △언론사 소유지분을 제한해야 한다 △동아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내용은 언론자유와 사유재산권을 무시한 초헌법적 탈법률적 발상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소유 지분 제한 주장〓대다수 언론학자들은 이에 대해 “위헌의 소지가 크고 기본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간섭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김영석(金永錫·신문방송학) 교수는 “궁극적으로 정부 주도로 언론사의 지분을 일정하게 나눠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미디어 업계가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 가는 마당에 특정 언론사의 소유 지분을 제한하자는 주장은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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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석(梁璟錫) 변호사는 “신문사의 소유지분을 제한하겠다는 발언은 시장경제원리와 자유민주주의를 천명한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 김우룡(金寓龍·신문방송학) 교수는 “방송은 공공 자산인 전파를 이용하기 때문에 시장 진입과 소유 구조에 대한 공적 규제가 있으나 신문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세계 어디서나 사기업”이라며 “서구 신문 기업의 역사를 봐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보다 공정하고 영향력있는 보도를 했다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폐간 발언〓언론의 존폐는 자유로운 경쟁과 독자들의 선택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노 후보의 발언은 언론의 존재 근거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여당 출신인 노 후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언론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시장 경제가 아닌 권력이나 국가 기관이 나서서 한 신문사의 폐간을 유도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들겠다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원우현(元佑鉉·신문방송학) 교수는 “공적인 책무를 진 정치인으로서 이런 발언은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언론은 권력의 어떤 위해적 발언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룡 교수는 “특정 신문에 대한 국유화 및 폐간 발언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버금가는 폭언”이라고 비판했다.

국민대 이창현(李昌炫·신문방송학) 교수도 “신문사의 존폐 여부는 오로지 시장과 독자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 떼라는 주장〓이 발언은 사회 환경 감시라는 언론의 고유 기능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화여대 박성희(朴晟希·언론홍보영상학) 교수는 “정치인들이 언론을 권력 창출의 도구로 오판한 데 따른 것”이라며 “언론이 객관적 보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큰 임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양경석 변호사는 “특정 언론사에 경선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고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언론사는 대통령 후보의 능력과 자질을 여론을 통해 자유롭게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석 교수는 “정치과정에서 감시와 비평은 신문의 고유기능 중 하나다”면서 “언론이 경선에 관해 보도하지 말라고 하면 민주당 경선은 당원들만의 잔치에 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창현 교수는 “정치인들은 언론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정치인들이 특정 신문의 보도 내용에 대해 불만이나 이견을 표현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보도에 대한 판단은 독자와 유권자가 내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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