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장인정신<1>]문화재 포장 25년 외길인생 김홍식씨

  • 입력 2002년 3월 6일 14시 29분


국립중앙박물관의 김홍식 학예연구사가 신라금관을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김홍식 학예연구사가
신라금관을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있다
《문화재 이동 전시를 위해 꼭 필요한 포장 전문가, 영화를 마무리 짓는 자막 처리 전문가,수작업으로 멋진 가죽 장정 책을 만들어내는 제본 전문가…. 여러 문화 분야에서 ‘그’가 없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그를 ‘독보적인 존재’라고 부른다.

‘독보’는 대개 세인들이 별로 눈길을 주지 않는 분야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하지만 그로 인해 더욱 빛난다. 우리 문화계 독보들의 아름답고 치열한 삶을 만나보는 ‘독보(獨步)’시리즈를 시작한다.》

1996년7월 애틀랜타올림픽 기념 특별전이 열린 미국 애틀랜타의 하이 뮤지엄. 세계 31개국의 대표적인 문화재 120여점이 선보이는 자리였다. 그곳에 모인 전세계 문화재 관계자들은 한국의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의 포장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360도로 뒤집어봐도 유물은 끄덕 없군. 최고의 포장이야”라고 탄성을 자아냈다.

그 반가사유상을 포장한 김홍식씨(57). 국립중앙박물관의 고졸 출신(대학 중퇴) 문화재 포장 전문 학예연구사로, 이 분야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그가 없으면 한국의 국보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의 포장을 거쳐야 비로소 안전하게 국내외로 이동할 수 있다.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국내 유수 박물관의 국보급 유물 포장은 대부분 그의 몫이다. 김 연구사가 포장하는 조건으로 유물 반출을 허가하는 경우도 있다. 중앙박물관의 학예직 연구원들은 “김 선생께서 포장을 하면 데굴데굴 굴러도 끄덕 없을 것” “비행기로 문화재를 수송하다 사고가 나도 그가 포장한 유물은 안전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김 연구사는 최근 일본 오사카국립역사박물관에서 16일부터 열리는 월드컵 기념 한일문화교류특별전 ‘한국의 명보’에 출품되는 270여점의 문화재 포장을 무사히 마쳤다. 이번 포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유물은 국보 126호 석가탑 출토 사리함. 사리함 끝에 걸려있는 작은 영락(瓔珞·장식물) 때문이었다. 바람만 조금 세게 불어도 떨어질만한 이 영락을 훼손시키지 않고 고정시킨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일주일간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남들이 출근하는 9시까지 사리함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포장할 수 있을까 고민,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지나니 길이 열리더군요. 눈으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중성지를 말아 장식물 옆에 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종이로 다시 장식물을 고정시켰죠. 그 작업만 꼬박 이틀이 걸렸습니다.”

김 연구사가 문화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3년. 대학(건국대 농화학과)을 중퇴한 뒤 사업에 실패한 그는 중앙박물관 유물과에 임시 고용직으로 취직했다. 기회가 된다면 문화재 보존 일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박물관에서 몇 년 일하다가 못다한 농화학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박물관에 들어와 처음엔 청소만 했죠. 문화재를 모른다고 구박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구박을 받을수록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문화재를 공부했죠. 그렇게 3년쯤 지나니까 이난영 유물과장(전 경주박물관장)께서 드디어 유물을 만져도 좋다고 하시더군요.”

한점 두점 문화재를 포장하게 됐고 1978년 시험을 통해 학예직으로 정식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1979년, 미국에서 열린 ‘한국미술 5000년전’ 출품 문화재 포장 기회를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포장에 뛰어들었다.

“그 때 미국에서 문화재 포장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평생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걸어온 문화재 포장 외길 25년. 어떤 매력이 그를 사로 잡은 것일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유물이 반출됐다 원 위치에 무사히 잘 돌아오면 그것이 보람이고 매력이죠.”

국내에 문화재 포장 전문가는 손꼽을 정도도 되지 않는다. 아직도 문화재 포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그래서 김 연구사는 “포장 전문가를 길러내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1979년 금관 포장에 일주일 걸리던 것이 지금은 1시간이면 족할 정도로 문화재 포장의 달인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재 포장이 점점 더 두려워진다”고 고백하는 김 연구사.

그는 올해 정년이다. 그가 퇴직하면 2005년 서울 용산으로 이전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포장은 누가 할까. 중앙박물관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박물관은 그래서 그의 정년퇴직을 그 때까지 특별 연기할 계획이다. 그는 국보보다 더 귀한 문화재인 셈이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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