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음식 맛은 칼맛…모양 백가지 쓰임새 천가지

  • 입력 2002년 2월 28일 14시 22분


《중국 식당에서 쓰는 네모칼로 생선회를 뜬다면 맛이 있을까? 훈제 연어 칼로 구절판용 당근을 채썬다면? 칼질은 음식 맛을 좌우한다. 요리가 다르면 칼의 생김새도 바뀌어야 한다.

하루에도 수만번 칼질을 해야 하는 요리사들에겐 날이 매섭게 선 칼이 제일이다. 그래서 요리의 종류에 관계 없이 볼품은 없지만 날 세우기 좋은 20만원 안팎의 일제 칼을 많이 쓴다.

날을 벼르며 마음을 다잡고 칼을 통해 요리에 기(氣)를 불어 넣는다. ‘네 이웃의 칼 보기를 돌같이 하라.’ 고수들에게는 자기 칼이 따로 있다.

날이 닳고 세우는 모양새가 제각각이고 쓰는 동안 정(情)과 기가 들어있어 남이 만지는 걸 꺼린다. 서울 프라자호텔의 ‘조리 7인방’ 고수들에게 칼 쓰는 법을 물었다.》

◇ 중식

'도원' 유원인 조리사·32

책상 다리와 비행기만 빼고는 모조리 요리해 먹는다는 중국음식. 그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데 프라이팬 국자 칼만 있으면 된다고 할 정도로 도구는 단출하다. 칼도 넓적한 직사각형의 식칼 하나다. 칼날 끝으로는 음식 모양을 내고 가운데 부분은 채소를, 안쪽 칼날로는 고기를 다듬는다. 중식은 넓고 얇게 써는 ‘편썰기’가 많은데 넓적한 칼은 여기에 제격. 마늘 다지기도 넓적한 칼몸으로 한번만 ‘퍽’ 내리치면 그만이다. 플라스틱 도마를 선호하는 다른 주방과 달리 중식당에서는 참나무 도마를 쓴다. 유난히 칼질이 많아 칼날이 쉬 무디어지기 때문. 또 내리치는 힘이 세야 재료가 쉽게 절단나기 때문에 무거울수록 좋다. 조리사들은 손목의 스냅만을 이용, 무거운 칼을 가벼운 펜대 놀리듯 다룬다.

◇ 일식

'고도부키' 임홍식 조리사·43

생선회는 칼맛이다. 회를 결대로 깨끗이 떠내지 않으면 혀에 감기는 촉감이 좋지 않고 영양분도 손실된다. 까탈스러운 미식가들 중에는 쇠맛조차 싫어 사기를 깨 회 뜨는 이들이 있을 정도. 회 뜨는 작업은 고참 조리사만이 할 수 있는 권한이다. 육질이 질기고 양이 적은 복어는 최대한 얇게, 육질이 부드러운 참치는 두껍게 뜬다. 생선의 결을 따라 한번에 떠야 하기 때문에 생선회 칼은 길고 얇다. 보통 칼날의 길이가 30㎝ 정도 된다. 이밖에 생선 뼈를 발라내는 칼, 생선을 크게 토막내는 칼, 야채칼 등 보통 4가지를 놓고 쓴다. 생선회칼은 수명이 1,2년 정도밖에 안된다. 면도날처럼 날이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3번 정도 갈아대니 오래 배겨낼 쇠가 없다.

◇ 양식

'프라자 뷰' 한형우 조리사·42

구운 육류용 스테이크 나이프, 뼈에 붙어있는 고기를 저며낼 때 쓰는 보닝 나이프, 치즈나 토마토를 써는 슬라이싱 나이프 등 제대로 갖추고 쓰려면 20가지 정도가 된다. 요즘엔 고기를 기계로 대량 절단하는 경우가 많아 빵칼, 보닝 나이프, 연어칼, 야채칼, 막칼 등 4가지 정도를 사용한다. 칼 소리가 요란한 중식이나 한식 주방에 비해 다지기 등이 많아 주방은 조용한 편. 고참들은 칼날이 10㎝ 남짓한 과도크기의 전용 칼로 요리 장식에 사용되는 재료를 다듬는다. 주방에 들어와서 1년 정도가 될 때까지는 칼도 못 잡아본다. 선배들이 출근하기 전 일찍 나와 몰래 써보는 수밖에 없다. 다 쓴 칼의 물기를 제거하고 기름을 살짝 발라 닦아내 건조하는 일은 신참 몫이다.

◇ 한식

삼청각 '아사달' 윤기영 조리사·32

정교한 채썰기가 많아 전통적으로는 날 세우기 좋은 시커먼 무쇠를 썼다. 그러나 녹이 쉽게 생기는 무쇠 대신 요즘엔 스테인리스와 탄소강 재질이 혼합된 일제칼을 쓴다. 자른 면이 정교하고 얇게 썰기에 좋은 ‘밀어 썰기’를 많이 한다. 주방에는 하루종일 온갖 야채를 채썰어대는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기계 대신 굳이 손으로 써는 이유는 기계로 썰 경우 야채의 수분이 배어나와 재료들이 뽀송뽀송한 상태가 되지 않기 때문. 20일 로라 부시 여사가 삼청각을 찾았을 때도 손으로 곱게 채 썬 구절판과 비빔밥에 느타리버섯, 산적 등을 내놓아 “모든 것이 훌륭했어요(Everything was wonderful)”란 찬사를 들었다. 견습생이 들어오면 △칼은 무딜수록 위험하다 △떨어지는 칼은 잡지 말라 △칼날이 몸 밖을 향하도록 놓아라 등의 안전 수칙부터 배운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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