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교포들 얼굴 펴준 '명성황후' 영국 공연

  • 입력 2002년 2월 9일 15시 57분


영국 교포들이 모처럼 만에 얼굴을 폈다.

영국의 주요 언론들이 런던 웨스트엔드 해머스미스 극장에서 공연한 뮤지컬 ‘명성황후’에 대한 기사를 크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에서는 한국의 개고기 식용 파문과 유학생 피살사건이 주목을 받았을 뿐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언론 보도는 거의 없었다. 현지 유학생들은 ‘명성황후’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데 도움을 줬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포들은 영국 언론의 ‘명성황후’ 보도가 찬사 중심이 아니라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언론과 공연계 인사를 대상으로 한 공연 뒤 찬사와 혹평이 엇갈리는 공연 평이 잇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97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뉴욕타임스가 ‘정말 볼만한 뮤지컬’이라는 찬사를 보낸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영국의 권위지 더 타임스의 기사 제목은 ‘Big, bold, baffling’. 작품이 크고 대담하지만 약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공연 관련 전문지 더 스테이지는 명성황후역의 이태원을 월드 클래스로 평가하고 스펙터클한 장면은 영국 공연계가 한수 배워야 한다고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작품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레 미제라블’의 아류작이라는 냉정한 평가도 있었다.

‘명성황후’ 제작진이나 교포들 입장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상황이다.

이 작품을 상투적인 애국심 차원에서 옹호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명성황후’를 겨냥한 현지 언론의 매서운 ‘화살’은 그만큼 이 작품에 쏠린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 ‘명성황후’의 주역 이태원이 출연했던 ‘왕과 나’ 비롯해 대다수 작품이 언론의 무관심 속에 막을 올리고 내린다.

이에 비해 ‘명성황후’는 더 타임스를 비롯, 가디언, 데일리 텔레그라프, 이브닝 스탠다드 등 5개 신문과 BBC에서 공연 분야의 주요 기사로 다뤘다.

‘명성황후’가 자막을 버리고 영어로 공연하는 것은 언어의 벽을 넘어 세계 시장을 두드리는 문화상품을 만들자는 의욕 때문이다. 두차례 미국 공연에서는 호평이 뒷받침됐음에도 불구하고 26억원의 빚이 남았다.

영어로 영국 무대에서 뮤지컬을 공연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에 앞서 곰곰히 그 의미를 짚어봐야 한다는 교포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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