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상거래 들러리된 문화재 반환협상

  • 입력 2002년 2월 6일 17시 59분


1993년 9월 14일 청와대.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회담에 앞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에게 외규장각 고문서 2책을 건넸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고문서를 건네받은 김 대통령의 표정은 상기됐다. 더욱이 미테랑 대통령은 외규장각 고문서 296책 전체를 반환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청와대는 외규장각 고문서가 곧 돌아올 것처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미테랑 대통령이 가져왔던 2책 중 1책을 도로 가져갔고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반환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2년 1월 28일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

한국의 조사단이 외규장각 고문서를 이날 처음으로 공식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서관 측은 규정상 1인당 하루 10책만 보여줄 수 있다고 고집했다. 도서관측과 줄다리기 끝에 조사단 3명이 하루 45책씩 열람키로 했다. 하지만 하루 열람분을 한꺼번에 내주는 것이 아니라 한권을 반납하면 한권을 내주는 식이어서 1책당 5분 정도씩 검토하는 데 그쳤다. 조사단은 결국 닷새 동안 전체 외규장각 고문서 중 3분의 2인 200책만을 검토하고 3일 귀국했다. 이번 조사의 성과라면 국내에 없는 책 29권을 확인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반환이 이뤄지지 않고 협상조차 지지부진한 것일까.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프랑스 정부에 있다. 그러나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문제를 경제 거래와 결부시켜 활용하려는 프랑스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섣불리 덤빈 한국정부도 비난을 면키 어렵다.

미테랑 대통령은 93년 우리나라에 고속전철 테제베를 팔기 위해 반환약속을 미끼로 활용한 인상이다. 그리고 이번에 현장조사를 허용한 것은 라팔전투기 판매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영삼(金泳三) 정부에 이어 김대중(金大中) 정부도 임기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한건주의’에 사로잡혀 허둥댄다면 차라리 돌려받지 않느니만 못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외국과의 거래에 문화재가 ‘들러리’를 서는 것은 조상의 얼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김차수 기자 kimc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