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찬식/한국영화의 ‘봄날’

  • 입력 2001년 12월 16일 18시 41분


2001년 우리 문화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일은 한국영화의 약진이었다. 올해 한국영화가 일궈낸 눈부신 성장에 대해서는 장황한 설명이 필요없을 듯하다. 올해를 기점으로 우리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잡았다는 한마디 평가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가 보따리 장사에서 벗어나 문화산업으로서 제대로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우리 문화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올해 우리 영화계에는 ‘대박’이 이어졌다. ‘친구’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등 국산 영화들이 연달아 수백만명씩 관객을 동원했다. 얼마 전만 해도 영화제작자들의 꿈속에서나 가능했던 수백만명의 관객 동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영화 ‘친구’의 경우 총 제작비가 18억원이었으나 입장료 수입은 490억원에 달했다.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산업답게 투자 금액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수익 창출이 이뤄졌다.

더욱 기분 좋은 것은 코카콜라나 맥도널드 햄버거와 함께 세계적인 독점 사업인 할리우드를 꼼짝 못하게 했다는 점이다. 올 한 해 국내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50%에 육박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와 1 대 1로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는 얘기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할리우드에 자국 영화시장을 내주다시피 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영화가 기록한 50%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놓고 ‘신화(神話)’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같은 결과는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스크린 쿼터를 사수해야 한다며 영화인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를 했던 게 엊그제 일 아닌가. 따라서 한국영화 열풍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며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중국에서의 한류 열풍과 함께 묶어 ‘가무(歌舞)에 뛰어난’ 우리의 민족적 특징을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 영화의 최근 강세를 어떻게 하면 우리 문화산업의 동력으로 연결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상 산업은 각국이 경쟁적으로 육성하려는 전략 분야이기 때문이다.

각종 관련 수치를 살펴볼 때 한국영화 붐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불투명하다.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수준작들이 계속 나와주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수그러들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지난주 개봉된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여러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영화 ‘해리 포터’의 세계적인 성공은 근본적으로 소설 ‘해리 포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영화가 발전하려면 영화인들의 힘만으로는 안 되며 다른 문화적 토양도 함께 비옥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좋은 영화가 나오려면 좋은 문화적 기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영화 산업은 문학은 물론 인문학의 각 분야와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우리 영화산업이 명실상부한 ‘산업’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영화인들은 단기간의 성취에 도취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적인 문화 역량을 꾸준히 강화해 나가야 영화 산업이 꽃을 피울 수가 있다. 그래야 2001년이 우리 영화산업의 원년(元年)으로 기록될 것이다.

홍찬식<문화부장>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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