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국립발레단장·유니버설단장, 맞수들의 '호두까기 축제'

  • 입력 2001년 12월 4일 18시 46분


문훈숙(왼쪽), 최태지(오른쪽)
문훈숙(왼쪽), 최태지(오른쪽)
국립발레단장 최태지(42)와 유니버설발레단장 문훈숙(38).

국내 양대 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두 단장은 평소 ‘영원한 맞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너나 되니 내 속 사정을 안다’는 심정일까. 외국에서 태어난 해외파인 두 단장은 발레를 위해 그들로서는 낯선 땅인 한국에 뿌리를 내렸고, 양대 발레단 최연소 단장이라는 점 등 닮은 점이 많다.

최 단장의 임기가 올해말로 끝나 1996년부터 6년에 걸친 즐거운 경쟁은 끝나게 됐다. 연말 ‘호두까기 인형’을 나란히 무대에 올리는 두 단장의 ‘은밀한 만남’을 3일 서울 청담동 한 식당에서 있었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지켜봤다.

△최태지〓작품 마무리에 바쁘죠. 정말 오랜만이네요.

△문훈숙〓‘계’가 깨진 뒤 제대로 된 만남은 처음인가요(웃음).

99년부터 두 단장과 광주시립발레단장 박경숙, 서울발레시어터단장 김인희 등 국내 4대 직업발레단장은 한동안 ‘스위스 계’를 했다. 한달에 10만원씩 모아 스위스 로잔으로 ‘문화여행’을 떠나자며 1년 가깝게 돈을 모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깨졌다.

△최〓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는 바실리 바이노넨이 안무한 ‘바이노넨 버전’이죠.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매력적이죠.

△문〓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한 국립발레단 공연은 무엇보다 화려한 기교와 파워 넘치는 춤이 압권입니다. 그런데 또 ‘두 발레단의 경쟁’이란 제목으로 기사가 나가나요. 부탁인데 ‘호두까기 축제’라고 해 주세요.

△최〓서로 다른 ‘호두까기 축제’가 벌어지는 두 공연장의 객석을 합치면 6000여석이죠. 10회 공연에만 6만명이 찾아오는 셈입니다. 누구의 작품이 좋은가를 떠나 두 버전의 호두까기가 서울에서 공연된다는 것만 해도 큰 자랑입니다.

△문〓발레단을 떠나게 돼 섭섭해서 어쩌죠. 단장님께서는 ‘해설이 있는 발레’와 ‘스파르타쿠스’ 초연 등 발레 대중화에 큰 노력을 기울이셨는데.

△최〓‘그것이 인생이죠’. 이젠 발레에 밀려난 인생의 나머지 부분에 시간을 쓰고 싶습니다. 발레에 엄마와 아내를 빼앗긴 두 딸과 남편이 기다리고 있어요. 어릴 때 발레를 시작하면서 화장실을 같이 갈 친구가 없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 경쟁의 시간이 너무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문〓전 당분간 무용수와 단장 직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직 무대가 그립지는 않아요. 다만 하루에 몇시간씩 바(Bar)에 매달려 몸을 풀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그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요.

△최〓얼마전 고별사 비슷하게 단원들에게 ‘이 자리(단장)가 나를 강하고 모질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골고루 기회를 줄 수 없는 단원들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뒤섞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문〓열살 때 아버지(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총재)가 날 한국 땅에 두고 가셨죠. 아버지가 떠나는 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발레가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강하게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문 단장이 발레단을 떠나는 최 단장에게 “럭키(Lucky)”라고 인삿를 하자 최단장은 “화이팅(Fighting)”으로 화답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국립발레단 공연안내

-18∼25일 오후 3시 7시반(18, 20일 낮 공연없슴) 예술의 전 당 오페라극장

-김지영 김주원 이원국 장운규 등 출연.

-2만∼5만원

-문의 02-1588-7890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안내

-20일 오후5시반, 21∼25일 오후3시반 7시반, 26일 오후3시반 세 종문화회관 대극장

-박선희 황재원 김세연 임혜경 등 출연.

-1만∼5만원

-문의 02-1588-7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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