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향토적 서정소설'애독 이유?…박헌호교수 평론집

  • 입력 2001년 10월 22일 18시 32분


해마다 9월초만 되면 강원 평창군 봉평면에는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흐드러진 메밀꽃을 보려고 20여만명이 모여든다. 볼만한 것은 메밀꽃과 이효석 문학비, 물레방아가 고작이지만 관광객들은 기념사진을 찍느라 부산하다. 왜 관광객들이 굳이 이곳을 찾아와 문학적 정감에 빠지는 것일까. 가산 이효석(1907∼1942)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무대여서? 그렇다면 염상섭이나 이상의 생가터나 문학비는 왜 한산한 것인가. ‘삼대’나 ‘날개’의 작품성이 못해서?

최근 출간된 박헌호 교수(고려대 BK21 한국학 교육연구단·사진)의 평론집 ‘한국인의 애독작품’(책세상문고47)은 일반독자들이 ‘메밀꽃 필 무렵’이나 ‘소나기’(황순원) ‘동백꽃’(김유정) ‘사랑손님과 어머니’(주요섭) 등의 소설을 선호하는 이유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인의 애독작품의 공통분모를 ‘향토적 서정소설’이라 규정한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 감춰진 삶의 진실을 탐구하고 △운명이나 한과 같은 전통적인 정서에 부응하며 △서정성을 유발하는 다양한 장치로 수준 높은 예술미를 보여주는 작품을 말한다.

박 교수는 단순화의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향토적 서정소설의 탄생 배경과 줄기찬 생명력을 한국 근대사의 독특한 경험으로 설명한다. 즉 서구적 근대화가 급작스럽게 진행되는 것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전통적 정서에서 위안을 얻었다는 점, 특히 해방 이후 학교 교육에서 이런 탈이데올로기적 소설을 대거 수용함으로써 대중의 ‘공통된 미적 경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향토적 대중소설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문학적 감수성의 골간을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해방후에는 1940년대 후반 김동리의 ‘황토기’, 1950년대 오영수의 ‘갯마을’, 1970년대 이문구의 ‘관촌수필’ 등으로 이런 경향이 면면이 대물림되어왔다는 얘기다.

일반 독자들의 문학 선호 경향을 ‘향토적 서정성’으로 파악하는 것은 일견 매력적이다. 이를 통해서 이청준의 다양한 지적 소설을 제쳐두고 ‘선학동 나그네’(영화 ‘서편제’의 저본)가 왜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이 왜 대중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지 등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1990년대 작가인 신경숙(‘풍금이 있던 자리’)과 김소진(‘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작품이 널리 읽혔던 이유도 이런 경향의 현대적 변용으로 파악한다.

박 교수는 “지금 우리 소설은 다양하게 분화되었고 특정 소설가의 작품도 한 가지 경향으로 획일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향토적 소재와 서정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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