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첫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펴낸 윤성희씨 인터뷰

  • 입력 2001년 9월 24일 18시 31분


소설가 윤성희(28)씨가 첫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민음사)을 들고 신문사를 찾았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이후 2년 반만의 일이다. 화려하게 등단한 신춘문예 동기 중에서 가장 앞서 금의환향한 셈이다. 그는 10여 편의 단편으로 문단의 총애를 받는 작가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동네 비디오가게 아가씨처럼 편하다.

“얼굴이 달덩이 같아졌죠? 볼 살이 아니라 술 살이예요. 친구들과 출판기념회한다고 요 며칠 무리를… 호호.”

데뷔작 ‘레고로 만든 집’은 자칭 ‘모노톤 소설’의 원형이다. 수족마비인 아버지와 무능한 오빠의 치다꺼리를 도맡은 ‘나’처럼 주인공 거의가 가난하고 쓸쓸하다. 고아처럼 고립무원인 이들의 삶은 ‘잘 내려가지 않는 변기’ 마냥 비루하다.

이들은 슬픔에 빠지지 않기 위해 위악과 냉정의 포즈를 가장한다. 굴뚝에 빠져 우는 고양이 새끼에게 눈도 깜짝 않고 벽돌을 떨어뜨려 죽이듯이. 그럼에도 이들을 미워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태생적으로 가진 자기 몫의 쓸쓸함을 반추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들은 ‘그늘에서 자라는 작은 꽃’(문학평론가 방민호)이다.

“처음부터 소외된 사람을 주목하겠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어요. 어릴 적 경험 때문인가 봐요. 다세대 주택이 많은 동네에 살면서 철마다 이사가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많았거든요.”

그는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할 때 직접화법보다 사물에 빗대는 간접화법을 선호한다. 형광등 줄에 매달아놓은 인형의 그림자를 사람이 목을 맨 형상과 연결시켜 주인공의 절망을 전달하는 식이다(작품 ‘이 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아무리 감춰도 소설에서 성격이 드러나는가 봐요. 저는 친구에게 화가 나도 대놓고 말 못하고 빙빙 돌려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소외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우회로를 통한 감정 묘사는 ‘신세대 작가’란 수식어를 부적절하게 만든다. 신세대의 발랄함보다는 80년대 리얼리즘 소설의 우직함에 가깝기 때문이다. 90년대 여성작가들의 전매품인 로맨스 역시 찾을 수 없다. 그가 정통파를 지향하는 ‘문학 근본주의자’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선배작가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독자의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세밀한 상황묘사, 공간상에서 떨어진 인물의 심리를 시점의 교차서술로 연결짓는 몽타주 기법(작품 ‘터널’ ‘계단’ ‘모자’ 등)이다. 이런 영화 기법과의 친연성으로 인해 ‘폴라로이드 세대의 작가’(문학평론가 황종연)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얻었다.

전통과 첨단의 접목으로 나름의 스타일을 만들고 있는 그의 관심은 아직도 쓸쓸한 주인공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의 존재를 그렸다면 이제는 이런 인간들의 부딪침에 대해 고민하고 싶어요. 아내와 어머니를 떠나보낸 두 남자가 호형호제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최근작 ‘계단’이 변화의 시작일 것 같아요.”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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