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親고은파 vs 反고은파…시인 고은 평가 '극과 극'

  • 입력 2001년 9월 17일 18시 31분


親고은 한원균교수 反고은 남진우씨
親고은 한원균교수 反고은 남진우씨
“시단은 둘로 나눌 수 있다. 친(親) 고은파와 반(反) 고은파로.”

한 중견시인이 얼마전 사석(私席)에서 한 말이다. 과장된 수사이기는 하지만 시인 고은(68)씨의 문학과 삶에 대한 평가가 극단으로 갈림을 보여준다. 고은 시인이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 실린 ‘미당 담론’을 통해 미당 서정주를 공개 비판한 뒤 이같은 엇갈림이 시작됐다.

최근 출간된 두 권의 비평서에서도 고은을 평가하는 시선은 양 극단을 갈린다.

문학비평가인 한원균 교수(37·국립청주과학대학 문예창작과)는 ‘고은 시의 미학’(한길사)에서 “고은은 만해 한용운의 문학성 성취에 비견되는 넓이와 폭을 지닌 대가”라고 평가했다.

반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씨(41)는 평론집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문학동네)에서 “고은은 문학적 부친(父親)의 유품을 일괄적으로 모독 파괴 방화하는 조급한 욕망의 소유자”라고 비판했다.

먼저 한 교수는 고은 시를 주제로 한 최초의 박사학위 논문인 ‘고은 시의 미학’에서 고은의 작품을 허무주의(60년대)-역사주의(70∼80년대)-문학주의(90년대)라는 식으로 단절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고은의 초기 시는 전후 한국사에 새로운 감수성과 기법을 도입했으며, 대표작 ‘만인보’와 같은 시들을 통해 민주화 투쟁기의 시에서는 현장성 뿐만 아니라 언어 예술적 측면도 등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고은은 일제강점기의 만해 한용운이 보여줬던 불교사상사적, 민족운동론적, 그리고 문학예술사적 성취를 해방이후 문학에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켰다”고 풀이했다. 이는 ‘한용운 평전’(민음사·1975년)을 쓰며 자신이 만해의 적자이길 원했던 고은 본인의 바람을 학문적으로 추인해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에는 60년대 고은 시인이 ‘시의 정부’로 불렀던 미당의 문하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뜨거운 이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남진우씨가 ‘미당 담론’의 허점을 비판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남씨는 책 앞에 실은 ‘고은의 미당 비판에 대하여’에서 “미당학교의 우등생으로 시작해서 자퇴생으로 문학적 한 주기를 마감한 고은은 어떻게든 서정주에 대한 부채 청산이 요구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고은의 미당 부정은 선배 시인의 강한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어두운 욕구’에서 비롯된 ‘시적(詩的) 아버지(poetic father)의 살해’라는 것이다.

남씨는 고은 시인이 미당의 유산을 무(無)로 돌리려는 조급함이 서정주 문학에 대한 ‘의도적 왜곡과 폄훼’를 야기했다고 봤다. ‘미당 담론’에서 고은씨가 문학평론가 김우창과 고(故) 김수영 시인의 미당 비판을 끌어들였지만 그 언급이 부정확하게 인용됐거나 근거가 매우 불확실한 것을 실례로 들었다.

또 고은씨가 미당의 토속성이나 늘어지는 서정성, 반동성을 비판했지만 이는 “고은을 포함해 미당학교 출신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서정주 에피고넨(아류)들’ 역시 극복해야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남씨가 보기에 고은의 시는 ‘미당에게서 전수받은 시적 문법의 틀은 거의 변함없이 유지한 채 거기에 민중주의적 포즈를 가미한’ 것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탈(脫)서정주’가 달성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