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조선 석조 나한상' 발굴지연, 훼손-도난 우려

  • 입력 2001년 8월 8일 19시 07분


지난 5월 강원 영월군 남면 창원리에서 경지 정리를 하다 발견된 조선 전기∼중기의 석조 나한상(羅漢像) 97구. 현존하는 나한상이 드문데다 이렇게 대량으로 발견된 것은 이례적이어서 미술사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나한상이 현장에 그대로 노출된 채 정식 발굴조사가 지연되고 있어 보존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확인된 나한상은 97구, 몸체와 떨어진 나한상 머리가 70점. 이외에 기타 석불과 광배로 보이는 석재 조각, 기와 조각 등도 함께 발견됐다. 나한상의 크기는 30㎝ 내외. 나한은 불교에서 최고 성자(聖者)를 뜻한다.

나한상은 현재 야외 천막 속에 보관되고 있지만 발견자가 혼자 관리하고 있어 도난의 우려가 높다. 특히 불에 탄 나한상의 경우, 석재의 강도가 약해져 세척과 경화(硬化)처리 등 보존 처리가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원도청 문화예술과의 정연구 연구원은 “불에 탄 나한상들은 손으로 만지면 돌가루가 떨어져나갈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일부만 먼저 보존 처리하기보다는 발굴 후 일괄적으로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발굴조사도 서둘러야 한다. 강원도와 강원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문화재청에 정식 발굴을 신청해놓았지만 아직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발굴은 국고 지원으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그 예산을 마련하고 있다. 다음주 중엔 발굴 허가가 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나한에 관한 신앙이 시작된 것은 통일신라 때. 고려시대 들어서면서 16나한상 500나한상 등을 조성해 봉안했으나 현재까지 전하는 나한상은 극히 드물다. 1994년 전남 나주시 다도면 불회사 인근에서 나한상 100여 구가 부서진 채 발견된 적은 있지만 나머지 나한상은 각각 전해오 는 것이다.

영월의 나한상들은 현재로선 조선시대 때 500나한상을 만들어 이 곳에 있던 사찰에 봉안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이 잘려 나가거나 불에 탄 흔적으로 미루어 조선 중기 이후 숭유억불정책으로 사찰을 없애면서 의도적으로 불상을 훼손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 미술사학자는 “정식 발굴을 할 경우 500나한이 모두 출토될 가능성이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불교미술사의 쾌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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