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 책사람세상]역사를 잊지말아야 "NO"를 말할수 있다

  • 입력 2001년 3월 2일 19시 14분


‘사료 한국사’(신서원·1998)는 참 재미있는 책이다. 자료집으로서의 성격 때문인지 훌훌 넘기고만 있어도 두어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삼국유사와 사기(史記), 한서(漢書)부터 시작해 국보위백서에 까지 이르는 한국사의 자료들을 띄엄띄엄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울고 웃게 된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 부분에 이르면 그런 자료들이 많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임을 자랑한다’고 외치는 서울대 문리대 ‘4·19 선언문’은 몇 번을 읽어도 다시 감격해 버린다.

읽다가 머리에 피가 솟는 사료들도 한둘이 아니다.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했다’고 당당하게 ‘조선 인민에게 고(告)’하는 미 극동사령부 포고 1호는 또 어떠한가.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는 것은 지난 2월 27일 ‘불평등한 SOFA 개정 국민행동’의 사무국장이 국회의 SOFA 비준 동의를 저지하기 위해 할복을 기도했다는 짧은 기사 때문이다. ‘상호간의 필요에 따라 외국 군대 주둔을 허용할 수는 있지만, 자국 국민을 침묵시키면서 외국 군대에 상식 이상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방식은 안된다.’

목숨을 건 항의에도 불구하고 SOFA는 28일 국회 본회의도 너끈히 통과했다고 한다. 아무쪼록 SOFA를 표결한 의원들이 앞으로 100년 후에 ‘사료 한국사’를 편찬할 후세의 역사가 입장에 서 보았기를 바란다. SOFA의 행간에서 ‘영구히 …에게 양여함’이나 ‘조선영토를 점령’ 등의 음울한 메아리가 조금이라도 겹쳐 울리지 않는지를.

‘나의 칼 나의 피’(인동출판사·1987)에서 고(故) 김남주 시인이 섬뜩하게 묻는 질문, ‘미군이 없으면/삼팔선이 터지나요/삼팔선이 터지면/대창에 찔린 깨구락지처럼/든든하던 부자들 배도 터지나요’에 자신만만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제는 감정적 반미(反美)를 넘어서서, 이성적 지미(知美)를 거쳐 냉정한 용미(用美)론자로 변하기를 기대해본다.

반미 성향의 르포 기사로 논쟁을 일으켰던 오연호씨(35)가 2년여간의 미국 생활에서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해냄·1998)가 참고가 될 것이다. ‘남한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는 미국에게서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은 너무 많이 배웠고, 꼭 배워야 할 것은 오히려 배우지 못했다’는 지적을 누가 거부할 것인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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