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터족' 신세대 "생각은 짧게 행동은 빨리"

  • 입력 2001년 2월 22일 18시 33분


“쿼터족을 아시나요?”

신세대의 행동과 사고에 걸리는 시간이 기성세대의 그것에 비해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서 생겨난 사회학용어인 ‘쿼터(Quarter)현상’. 쿼터족이란 이렇게 속도가 빠른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올해 초 주부 박모씨(40)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10)이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유를 묻자 아들은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함께 맞춘 커플 링(couple ring)인데 이게 요즘 대 유행”이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 한달쯤 지나자 아들은 그때와 다른 모양의 반지를 끼고 있었다. 한달 전 사귀던 여자친구와는 벌써 헤어졌고 새 여자친구가 생겨서 커플링을 새로 맞췄다는 것이다.

중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만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을 기념하는 ‘100일 파티’는 이미 ‘투투데이’로 바뀌었다. 즉 만난 지 22일을 기념하는 새로운 유행이다. 만난 지 100일씩이나 관계가 유지되는 커플이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강남지역의 고등학생 사이에서 ‘명사박사’ ‘집합박사’라는 독특한 유행어도 생겼다. 이들은 성격이 급해서 책 한권을 진득이 다 보지 못하고 처음 몇 페이지만 공부하다 곧 싫증을 내고 다른 참고서로 바꾼다. 이 때문에 수학 참고서 첫 장인 ‘집합’과 영어의 첫 장인 ‘명사’는 5, 6번씩 공부하게 돼 ‘명사박사’ ‘집합박사’가 된 것이다.

쿼터족은 기성세대와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긴 문장을 사용하기 싫어한다. ‘죽여준다’ ‘뻑간다’ 등 한 단어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하는 것은 기본이고 채팅 언어로 ‘ㅋㅋㅋ(쿡쿡쿡, 혹은 키득키득 같은 웃음소리)’ ‘ㅎㅎㅎ(하하하 혹은 호호호)’처럼 아예 부호가 언어를 대체하는 현상까지 생겼다.

어린이들의 인내심 부족이 교과 과정의 명칭 자체를 바꾼 사례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힘든 운동으로 기억되는 ‘1000m달리기’는 ‘1000m 걷거나 달리기’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서울의 N초등학교 교사 김모씨는 “교사들이 아무리 연습을 주문해도 아이들이 ‘오랫동안’ 뛰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변화와 속도감 있는 구기 종목은 몰라도 오래 달리기는 이들에게 운동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이 종목의 정식 명칭이 ‘1000m 걷거나 달리기’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진단 및 전문가 조언…‘디지털문화’ 영향… 이해 노력을▼

전문가들은 신세대의 사고와 행동이 이처럼 빨라진 것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즉 깊은 사고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과정을 필요로 하는 아날로그 문화에 비해 ‘예, 아니오’가 주류를 이루는 디지털 문화가 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빨리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

또 기성세대가 정보화시대의 속도문화에 적응을 못해 이들의 속도를 실제보다 더 빠르게 느끼는 것도 문제다.

한국심리상담연구소 황미구(黃美九) 전문연구원은 “아이들이 빠른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빠르다는 사실’을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며 “신세대의 속도를 그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이를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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