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藥-제조 검증 유통 실태]형식적 약효검사

  • 입력 2000년 6월 1일 19시 30분


식품의약품안전청은 89년 1월 이후 약효가 검증되지 않은 약의 유통을 막기 위해 오리지널 신약과 약효가 동등한지를 알아보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인체시험)’을 거친 약에 한해 판매를 허가해왔다. 모두 522개 품목으로 이 품목들은 마음놓고 써도 괜찮다는 뜻.

또 89년 1월 이전에 허가난 약은 7월 시행되는 의약분업을 앞두고 일부를 제외하고 약효 동등성시험의 하나인 ‘비교용출시험’을 거쳐 허가를 내주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한다.

▼"용출검사로 약효비교 문제▼

그러나 대한약리학회 대한임상약리학회 등 전문단체는 그동안 인체시험을 하지 않고 용출검사만으로 약효 동등성을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식약청에 수차례 건의했다.

이에 대해 식약청은 시간과 예산도 없고 의사 약사 시민단체가 참여한 의약분업실행위원회의 합의사항이라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우선 비교용출시험만으로 약효 동등성을 인정하고 2002년부터 인체시험을 통해 약효를 판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세계 각국의 의대와 약대의 교과서로 널리 쓰이고 있는 ‘약의 생물학적 동등성’(미국 식품의약국 약평가연구센터의 스리칸드 다이박사 저)이란 책에는 “약의 화학적 검사(함량분석 등 비교용출시험)를 약의 생물학적 동등성 예측지표로 써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있다.

식약청이 89년 1월이후 허가난 약에 시행하고 있다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의료계에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약이 신체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는 이 시험은 최소 성인 12명에게 일정 기간 오리지널 약을 먹이고 1주 정도 쉰 다음 카피(복제)약을 먹인 후 반응을 보는 검사다.

▼자격미달기관도 실험맡아▼

시험대상자는 보통 18∼30명이 필요하며 병원에 입원시켜 약 먹을 때 음주를 금하고 똑같은 식사를 하게하고 24시간 동안 채혈해 혈중농도를 계속 체크하는 등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식약청이 98년 이 시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확대 지정한 기관 20개 중에는 철저하게 시험대상자를 관리하지 않고 약효 시험을 하는 곳이 있어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신상구(申相久)센터장은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약은 비교용출시험만으로 약효 동등성을 100% 신뢰할 수 없다”며 “모든 약에 대해 신체시험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란 미 식품의약국처럼 오리지널약은 ‘RLD’, 신체시험을 통과한 약은 ‘A’, 약효 동등성을 인정받지 못한 약은 ‘B’란 코드를 부여해 약을 쓰는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골라 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식약청은 “국내에서도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기준에 따라 약을 신체시험 용출시험 임상시험 등 세가지로 분류해 철저하게 검사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경험상 용출시험을 통과한 약의 100%가 신체시험에서도 합격했다”고 말했다.

▼식약청 "부실한 검사 없다"▼

의약품관리과 김영찬(金永璨)서기관은 “신체시험을 시험하는 기관도 인력 시설 기구 등을 검증받은 곳만을 지정했기 때문에 부실한 검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약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고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실시하기 위해 식약청으로서는 법적으로 안해도 되는 용출검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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