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봉스님 '종정열전'…한국불교 큰 스님들 '전설'에 도전

  • 입력 1999년 11월 23일 18시 51분


한국불교 큰 스님들의 ‘전설’이 도전을 받고 있다.

대승종승려인 혜봉스님(경기 이천시 지족암)은 최근 발간한 ‘종정열전’을 통해 판사 출신으로 알려진 효봉(曉峰·1888∼1966)스님의 이력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한국법관사등에 이름없어▼

‘조선총독부 직원록’과 ‘한국법관사’ 등의 명단을 조사한 결과 효봉스님의 속명인 ‘이찬형’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엿장수 중’ ‘판사 중’ ‘절구통 수좌’ 등으로 불리는 효봉스님은 그간 ‘한국인 최초의 판사로 임용돼 평양 복심법원(지금의 고등법원)에 재직하다 어느 죄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뒤 인간적인 회의를 느껴 금강산 유점사로 출가했다’고 전해져 왔다.

▼寒巖스님 '坐脫立亡'도 오류▼

혜봉스님은 또 한암(寒巖)스님의 ‘좌탈입망’(坐脫立亡·좌선하는 자세로 입적함)과 27년간 오대산에서 한발짝도 산문(山門)을 나가지 않았다는 ‘불출동구(不出洞口)’의 전설도 오류라고 주장했다.

또 2차대전 막바지에 이케다(池田)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 한암스님에게 전쟁의 승패를 물었다는 기록도 이케다의 재임 기간에 비춰 허황된 소문이라고 지적했다.

혜봉스님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해당 문도회에서는 일체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일방적 주장에 대응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고 시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57년부터 59년까지 경남 통영 도솔암인근 토굴에서 효봉스님을 모셨던 전 조계종 전국신도회장 박완일씨는 효봉스님이 판사가 아니었다는 주장에 대해 “효봉스님이 속세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기 위해 속명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문도회측선 "불경스런일"▼

박씨는 “황제나 대통령도 출가한 뒤에는 속세에서의 경력을 밝히지 않는 것이 불가의 도리이며 과거사를 묻지 않는 것이 절집의 오랜 전통이자 미덕”이라고 전제하면서 “효봉스님이 속명을 제대로 밝혔을 경우 가족과 총독부가 자신을 찾아나서게 되는 것을 꺼려해 이름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혜봉스님은 “유명한 스님들의 생애를 사료적으로 진실되게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명철기자〉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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