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와스프'/미국의 선민계층 해부

  • 입력 1999년 10월 29일 20시 54분


▼'와스프' 오치 미치오 지음/살림 펴냄▼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로 불리는 미국. 그러나 이 나라에도 ‘와스프(WASP)’라는 선민(選民)이 있다.

백인(White) 앵글로색슨(Anglo―Saxon) 신교도(Protestant)를 통칭하는 말.

저자가 일본인인 점이 의아스러울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객관적이고 다양한 시각으로 미국의 지배계층 와스프를 해부한다.

메이플라워호의 상륙과 함께 미국 역사의 주인이 된 와스프. 그렇지만 유태인과 가톨릭교도의 이민이 늘어나면서 점차 위협을 느낀다.

24년 ‘개정이민법’에서 민족별 이민자 수를 제한해 세력을 유지하려 하지만 29년 경제공황은 와스프에게 상처를 입힌다.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집권하면서 상류계급의 자산운용을 규제, 와스프의 영향력이 급강하하기 시작한 것. 이때부터 와스프는 줄곧 ‘반(反)민주당, 친(親)공화당’의 정치적 정서를 갖게 된다.

2차대전이 막을 내린 뒤 미국 정가를 뒤흔들었던 ‘빨갱이 사냥’ 매카시즘. 저자는 그 광풍도 비(非)와스프였던 매카시 의원이 와스프를 향해 겨눈 비수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매카시 자신은 견책을 받고 권력의 주변에서 탈락하고 말았지만 6년 뒤 가톨릭 교도인 케네디가 대통령에 오른 것은 당파를 떠나 매카시의 ‘정지작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세월이 흐르면서 와스프는 옛날보다 더욱 배타적 경향으로 나가는 ‘신우익’ 와스프와, 보다 개방되고 타인종과의 공존을 꾀하는 ‘자유주의적’ 와스프로 분열된다. 하지만 이들의 분열은 역으로 자유주의적 와스프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으며 보수파의 배타성도 희박해져 간다.

와스프를 와스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모장(家母長)적 모친상과 클럽활동.

전형적인 와스프 어머니는 애정을 적게 표현하면서 예의범절을 중시한다. 이들의 엄격한 교육이 특유의 와스프 신사숙녀를 키워간다.

대학에 진학하면 배타적 클럽활동을 통해 와스프의 매너와 폐쇄성을 익힌다. 테니스 골프 등에서 최근까지 타인종의 스타가 배출되지 못했던 것도 이것들이 전형적인 ‘클럽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와스프는 어떻게 변해 갈까.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왔던 와스프는 그 기득권을 서서히 타 인종에게 배분하며 권좌에서 평지로 내려오고 있다. 그럼에도 와스프가 ‘미국의 정신을 이끌어온 상류층 매너의 보존자’라는 긍정적 자리매김이 곁들여진다.

풍성한 정보와 사례는 책이 가진 중요한 미덕. 그렇지만 연관되는 내용이 여러 장에 흩어져 있어 산만한 느낌을 준다. 부시가(家)에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 할애된 점도 흥미를 떨어 뜨린다. 303쪽 8000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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