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선의 책꽂이]밀레=땅 모네=물 이중섭은?

  • 입력 1999년 10월 15일 18시 45분


▼'햇살속에 발가벗은' 박인식 지음/문예마당▼

1999년은 이중섭, 김환기 전시회에 이어 박수근의 전시회가 열려 그림 감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풍요로운 해다.

이들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화가들의 진솔한 삶과 생활이 실제 작품 세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그림을 그리게 된 상황을 이해하고 있을 때 작품을 보는 시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등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외국 유명 화가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한다면,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더불어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구체화시켜줄 수 있는 책이 바로 ‘햇살 속에 발가벗은’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여러 화가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고갱은 뜻밖에도 ‘희생자’였으며, 고흐는 운명 그 자체였다. 로트렉은 움직임에 대한 기이한 감수성을 지녔으며, 드가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더욱 괴팍해진 것이 살구씨 같았다. 모네의 모든 작품은 ‘물’로 파악될 수 있었으며, 르느와르는 난데없게도 여자로 풀렸다. 위트릴로의 그림은 술을 권하면 그 술잔을 한번도 거절함이 없이 “예!술”하고 받아 마시던 알코올중독자로서의 ‘예술’이었고. 모딜리아니는 지구가 아닌 어느 별에서 태어났지만 지구로 와서 잠시 살다가 사라진 ‘어린 왕자’의 본명이었다. 밀레는 ‘땅’의 다른 이름이었다.

처음 이 글을 접했을 때는 난해한 듯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다 읽은 후에는 화가를 이렇게 단적으로 잘 표현하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딜리아니의 그림과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이야기를 좋아하던 나의 무의식 세계에서,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명확하게 찾아낼 수도 있었다.

이 책의 성격을 미술 감상의 이해를 돕는 책으로 국한해 규정하기는 아쉽다. 한 권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긴박감과 재미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책은 어떠한 소재라도 사람을 살맛나게 하는 것인가 보다.

한정선(이화여대 교육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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