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리콴유 자서전'

  • 입력 1999년 10월 15일 18시 45분


“오늘날 싱가포르가 있기까지의 험난한 역정을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직하고 유능한 정부, 공공질서와 안보가 보장되는 사회 등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님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인구 280만명의 소국. 그러나 국가 경쟁력 발표에서 언제나 1,2위를 다투는 ‘아시아의 진정한 작은 용’. 정보화와 투명성에서 선두를 달리는 나라. 우리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싱가포르의 모습이다.

리콴유(李光耀). 그의 이름을 빼고 싱가포르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싱가포르의 리콴유’라기보다는 ‘리콴유의 싱가포르’이기 때문이다.

65년부터 4반세기동안 독립국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재임, 마침내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주도국가로 성장시킨 그가 21일 방한한다.

때맞춰 선을 보이는 ‘리콴유 자서전’(원제 싱가포르 스토리)은 단지 한 정치 지도자의 일대기에 그치는 책이 아니다. 한 인간의 성장사와 함께, 국가의 탄생(Birth of Nation)에 따르는 정치 사회적 배경을 심도있게 다룬 역사적 자료다.

1950년,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하고 영국 사법고시를 통과한 야심만만한 변호사 부부가 싱가포르행 귀국선을 타고 입항한다.

처음 그에게 ‘좌파’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귀국과 함께 노동운동에 가담한 그는 교환수 노조 파업 등에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정치에 첫 발을 디딘다. 54년, 공산주의자의 참여 아래 인민행동당을 창당한 뒤 타고난 현실감각과 정확한 판단력에 힘입어 차츰 지지도를 넓히고 당내 극좌분자들의 세력을 제압해 나간다.

59년 총선에 승리한 그는 영연방 싱가포르 자치령의 총리가 된다.

65년 말레이연방으로부터의 독립. 영광과 환희의 날이었을까. 짐작과 달리 당시 상황에 대한 묘사는 무겁고도 침통하다. 리콴유는 도시국가로는 독자적인 발전이 어렵다고 판단, 63년 연방에 가입했지만 중국인이 65%를 차지하는 ‘말레이 내 중국인의 섬’싱가포르가 연방에는 눈엣가시나 다름없어 결국 결별하고 만다.

리콴유 최초의 정치적 실패이자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의 초인적인 의지와 명철한 판단은 그같은 시련을 더없는 기회로 반전시킨다.

아쉽게도 이 지점에서 책의 문은 닫힌다. 리콴유자신은 ‘훗날 기회를 보아 25년동안의 발전과 번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자서전에 드러나는 그의 감탄할 만한 면모는 놀라울 정도의 솔직성. 2차대전중 정보분야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사실, 선거운동중 ‘중국어 말레이어 등에 능통하다’며 거짓말을 한 사실을 거리낌없이 고백한다. 우리에게 그처럼 귀감이 되는 지도자와 자서전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류지호옮김 736쪽 1만5000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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