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오조영란 著 '남성의 과학을 넘어서'

  • 입력 1999년 8월 13일 19시 40분


▼'남성의 과학을 넘어서' 오조영란·홍성욱 엮음/창작과 비평사 펴냄/308쪽 9000원▼

"페미니즘과 과학의 만남은 왜 필요한가?" 이러한 물음은 여성학계나 과학계 모두에게 산적한 코앞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추상적인 이야기로 들릴수 있다. 그러나 17세기 이래 과학기술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을 헤아려보면 이 물음이 한낱 '헛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령 부엌의 냉장고, 세탁기 등이 여성을 자유롭게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피임기술의 발달 역시 원치 않는 임신, 출산으로부터 여성을 자유롭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반면에 냉장고 세탁기가 '가사노동을 더욱 소외된 노동'으로 만들고, 피임기술이 적절한 임상실험 기간없이 그대로 여성의 몸에 도입된 '그늘진 역사'는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이 책은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과학기술지식과 사회구조의 연관을 고찰하고 있는 8편의 논문을 모아 놓은 것이다.

8편의 논문들은 모두 '성'(sex, gender)에 대한 이분법적 논리의 극복을 목표로 삼는다. 정말로 남녀는 생물학적으로 호르몬과 두뇌구조가 다른가? 남자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며 수리(水理)능력이 뛰어나고, 여자는 감성적이고 소극적이며 언어능력이 우세한가? 이 책은 성에 대한 이분법적 논리가 결국 남녀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게 된다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과학적 배경이 없는 대학 초년생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여졌다. 또 책의 말미에 붙여놓은 근현대 여성과학자 14명의 짧은 전기도 눈길을 끈다.

최용석<마이다스동아일보 기자>duck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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