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신화로 보는 악과 악마」

  • 입력 1999년 6월 18일 19시 27분


■「신화로 보는 악과 악마」이경덕 지음 동연 9,000원 ■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 응원단의 이름은 ‘붉은 악마’. 요즘 TV광고나 문학작품에서는 ‘달콤한 악마’ ‘귀여운 악마’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그러나 19세기까지만 해도 서양에서 악마란 단어는 섬뜩한 감정이 묻어나는 주제였다.

그렇다면 악마란 무엇인가? 악은 인류역사에서 신만큼이나 오래된 종교와 철학의 대상이었다. 이 책은 악의 기원과 악마의 다양한 이미지를 방대한 고대 신화와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추적한다.

“천지가 아직 분리되지 않았을 때 우주는 거대한 알모양을 하고 있었고 암흑과 혼돈이 지배하고 있었다.”(중국의 천지개벽 신화)

대부분의 창조신화에서 태초에 세상은 하늘과 땅이 붙어 있는 형상이었다. 고대신화에서 선신과 악신은 대부분 ‘쌍둥이’나 ‘형제’로 태어난다.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빛의 신)와 아흐리만(악의 신), 이집트인의 ‘오시리스’와 ‘세트’…. 저자는 신화에서 악마의 기원은 신의 기원과 같다는 사실을 밝힌다.

종교간 전쟁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신의 사도가 될 것인지, 악마의 졸개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한판 승부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패배한 종족의 신’은 악령의 지위로 전락했다. ‘야훼’에 패배한 ‘바알’은 유태인에게 악신으로 남게 됐다.

서양의 대표적인 악마는 그리스도교의 ‘사탄’. 이 외에도 뱀 용 마녀 늑대인간 흡혈귀 좀비 괴물 거인 원귀(寃鬼)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악마의 이미지를 자세히 묘사하고 비교한다.

그렇다면 ‘전기불빛’이 ‘어둠’을 물리친 과학의 시대. 악마는 사라진 것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TV뉴스나 영화에서 선악의 대립구도는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는 것. 외계인을 악마로 설정하는 할리우드 영화도 그렇고, 종교 민족분쟁에서 자행되는 ‘인종청소’에서도 상대방은 제거해야 할 ‘악’으로 규정되고 있다.

서양 문명의 비극은 선과 악으로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구별하면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 “인도의 파괴의 신인 ‘시바’는 악마로 규정되지 않는다. 단지 우주의 법칙에 따라 되풀이되는 창조와 파괴 유지를 맡은 신 중의 하나일 뿐이다. 악이 없는 세계를 상상해보자. 선의 존재가치도 없어질 것이다.”

세계의 신화와 종교에 관련된 책들을 주로 번역해왔던 저자는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의 신화 등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악마의 이미지를 분석한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예를 들면서도 우리나라의 전설에 내려오는 악령을 소개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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