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두브로브니크…」/한 문명비평가의 답사기

  • 입력 1999년 6월 18일 19시 27분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권삼윤 지음 효형출판 317쪽 10,000원 ▼

무심한 돌덩이의 한 점 이끼에도 세월의 흔적이 있다. 기둥 한쪽이 무너져내린 쓸쓸한 건축물에도 한 시대를 떠받쳐온 당당한 정신이 숨어 있다. 그것이 문화유산이다. 거기에 동서(東西)가 있을 수 없고 고금(古今)이 있을 수 없다.

한 시대의 정신과 고뇌의 흔적들. 유네스코는 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해오고 있다.

이 책은 유럽지역의 세계문화유산 기행문.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에서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역사지구,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이르기까지 30여 문화유산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는 18년에 걸쳐 50여개국의 세계문화유산을 탐방해온 프리랜서 문명비평가.

이 책 ‘두브로브니크는…’는 기행문이어서 편안하다. 그러나 풍경 스케치나 감상문 차원의 흔하디 흔한 유럽기행문과는 분명 다르다. 글의 행간에 유럽 문화의 정신적 심층과 역사적 배경, 인간사의 애환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건져올린 저자의 인문학적 시각이 바로 이 책의 매력.

서양의 신화 속으로 들어가 유럽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격변의 역사가 유럽인의 문화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찬찬히 둘러보기도 한다. 기행을 통한 유럽 문화읽기, 문화를 통한 유럽 읽기다. 뿐만 아니다. 유럽의 문화유산을 우리의 것과 비교하면서 동서양 정신의 차이까지도 읽어내려 한다.

하늘을 찌를듯 157m에 달하는 독일의 쾰른대성당. 저자는 서양인들이 이 성당을 탑으로 부르는데 주목, 동서양 종교문화의 특성을 비교한다. 기독교의 탑은 불교의 탑과 달리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직립이고 승천을 의미한다. 그 승천은 새로운 삶, 즉 영생을 뜻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이자 생에 대한 의지인 셈이다. 기독교에서 누워있는 것은 패배에 다름 아니다. 쾰른대성당 역시 이러한 믿음의 반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불교는 다르다. 열반 자체가 삶의 완성이라고 보기 때문에 수직 상승을 지향하는 높은 탑이 나올 수 없다(누워있는 석가의 열반상을 보라).

그러나 저자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발칸반도 아드리아해변에 위치한 크로아티아의 고도(古都) 두브로브니크가 아닐까.

이곳은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중세 유럽무역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발칸의 화약고로, 늘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전통문화를 지켜온 곳. 발칸 특유의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 진초록 올리브 소나무가 어울려 완벽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가슴 저미게 하는 곳. 저자는 이 도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고.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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