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책]신경림/현덕 소설-백석 시-김남천 소설

  • 입력 1999년 4월 30일 20시 07분


현덕의 소설집 ‘남생이’를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때다. 이미 ‘포도와 구슬’ ‘광명을 찾아서’같은 동화와 소년소설을 통해 알고 있는 이름이어서 선뜻 책을 샀고, 샀으니까 읽기는 했지만 별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잊고 있다가 고등학교 때 다시 꺼내 읽었다.

이때의 느낌을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며칠동안은 ‘경칩’이나‘남생이’에 나오는 노마, 기동이 그리고 중편 ‘군맹(群盲)’의 만수, 만성형제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눈에 어른거렸다.

내가 문학에 대한 꿈을 가지기 시작한 때도 아마 이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특히 ‘군맹’은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아, 대학 입학시험을 치러 왔을 때는 동무들을 유혹하여 그 무대인 낙산 밑 빈민가를 구경가기도 했다.

백석의 시집 ‘사슴’은 대학 들어와서야 구해 읽었다.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로 시작되는 ‘주막’같은 시는 중학생 잡지의 시감상란에서 읽어 외고 있었고, 또 책방에 서서 읽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너무 좋아 그 시가 실린 어려운 잡지를 사서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터이지만, ‘사슴’을 읽고 났을 때의 감동은 엄청난 것이었다. 나는 그날밤 한숨도 자지 못했고, 얼마동안은 매일처럼 그 시집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다방에서고 강의실에서고 꺼내 읽었다. 한동안 나는 ‘사슴’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고 말한대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대학시절에 읽은 책에 또 김남천의 소설 ‘대하(大河)’가 있다. 서도를 무대로 한 신흥부호 박참봉 일가의 가족사라 할 이 소설에서 가장 끌린 인물은 성질이 헌걸차고 키도 큰 서자 형걸이었다. 그가 하는 짓은 다 근사해 보여, 가령 집에서 부리는 막서리의 처 쌍네와의 불륜도 아름다워 보였고, 기생 부용이와의 사랑은 더더욱 멋져 보였다. 생각해 보니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나 전석담의 ‘조선경제사’를 읽은 것도 이 소설로 인해서이다.

최근에는 현기영의 소설 ‘지상의 숟가락 하나’를 감동적으로 읽었다. 글을 통한 깊은 자기성찰과 탐구, 이것은 요즘의 우리 문학에서는 아주 드문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신경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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