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황릉의 비밀 1, 2」

  • 입력 1999년 4월 30일 19시 45분


★「황릉의 비밀 1, 2」웨난·양스 지음 유소영 옮김 일빛 각 328, 346쪽 각 8,500원★

1958년 9월 6일. 중국 신화사통신의 타전. ‘중국 명조의 명13릉 중 제13대 황제 신종이 묻혀 있는 정릉(定陵) 발굴. 지하궁전같은 아치형 내부. 높이는 80m. 2년2개월에 걸친 대장정. 세계 고고학사에 길이 남을 발굴.’

1989년 8월21일. 북경만보 헤드라인. ‘명대 정릉 발굴 보고서 나와, 30년만에 발굴 완성.’

이 두 보도 사이엔 30년 세월의 간극이 있다. 중국 건국(1949년) 이후 최초의 황릉(皇陵) 발굴이자 전세계 고고학계를 들뜨게 했던 발굴이었지만 30년 넘게 보고서 하나 나오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혹시 무슨 정치적 음모라도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은 그 비밀을 파헤친 발굴 다큐멘터리다. 정릉 발굴에 대한 공산당의 정치적 박해와 유물 파괴, 그로 인해 발굴단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수모 등. 원제 ‘풍설정릉(風雪定陵)’에서 드러나듯 시종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베이징(北京)의 ‘명13릉’은 중국 명대 황실의 황릉 13기가 모여 있는 고분군. 1956년 여름, 일군의 고고학자들은 이중 정릉 발굴에 들어갔다. 발굴이 거의 끝날 무렵, 발굴단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당시는 ‘하방(下放)운동’과 ‘문화대혁명’의 회오리가 서서히 일기 시작할 무렵. 마오쩌둥(毛澤東)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세력은 이 정릉 발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하나 둘 음모를 꾸몄다. ‘이 발굴은 봉건지주계급의 우두머리인 황제를 찬양하는 것’이라는 누명을 씌웠고 끝내는 발굴단을 반동으로 몰아 해체해 버렸다.

발굴단장이었던 젊은 고고학자 자오지창(趙其昌) 역시 지방 농장으로 쫓겨나 10년간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그러나 그의 머리 속엔 온통 발굴 생각 뿐. 그는 밤마다 그곳 농장 근처 무덤에 숨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10년 사이 홍위병들은 발굴에 참여한 다른 고고학자들을 숙청하고 발굴된 황제 황후의 시신까지 불태워버렸다. 중국 현대사의 모순이자 비극이었다.

오랜 세월 발굴 보고서가 빛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이같은 정치적 배경 때문이었다고 저자들은 전한다.

이 책은 고분 발굴이라는 색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고 그것을 통해 역사가 얼마나 준엄한 것인지를 일깨워 준다. 옮긴이의 말처럼 ‘황홀하고 숨막히는 역사 여행’인 셈이다. 공동 저자인 양스(楊仕)는 발굴단장이었던 자오지창의 부인. 웨난(岳南)은 중국의 젊은 역사소설가.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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