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히로인 문정숙-90년대 스타 이혜영 묘한 인연

  • 입력 1999년 4월 11일 19시 42분


60년대의 스타급 여배우 문정숙(71), 영화 연극무대를 누비는 개성적인 여배우 이혜영(37)이 만났다. 8일 서울여성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되돌아보기’가 열린 예술의 전당(서울 서초구 서초동).

보조의자까지 동원될 정도로 성황을 이뤘던 이 날, 고 이만희감독이 연출하고 문정숙이 주연을 맡은 ‘귀로’(67년작)상영회에 초청된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반가워했다.

둘의 만남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이만희 감독을 둘러싼 이들의 묘한 인연 때문. 문정숙과 이감독은 각각 이혼한 뒤 염문을 뿌렸던 한때의 연인 사이. 이혜영은 이감독의 딸이다.

그러나 두사람에게는 이감독과의 인연, 굴곡 많은 사생활 등 ‘선정적’인 이유를 빼고도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둘 다 오랜 조연생활을 거쳐 주연급으로 올라선 ‘연기파’배우들.

“두 사람을 초청한 것은 둘 다 자기 시대에서 여성의 내면을 드러내는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대표적인 배우이기 때문이다.”(영화제 프로그래머 남인영)

어찌 보면 문정숙과 이혜영은 한국영화의 주류 장르인 멜로영화와 잘 맞지 않는다. 다소곳하고 가련한 멜로물의 전형적 여주인공을 연기하기에 이들의 이미지는 너무 강렬하고 연기의 선은 굵다.

그러나 다양한 이미지의 여배우들이 공존했던 60년대, 문정숙은 ‘오발탄’ ‘귀로’ ‘만추’ 등에 출연하며 우수와 열망이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 지적인 이미지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이혜영 역시 영화 ‘땡볕’ ‘티켓’,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눈물의 여왕’ 등에서 관능적이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쌓았다.

그러나 “그 폭발적 에너지 때문에 이미 정해진 이미지에 배우를 맞추는 요즘의 환경에서는 손해를 보는 것 같다”(남인영)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이들이 주로 출연했던 멜로영화는 불륜(60년대) 호스티스 영화(70〃) 사회성 멜로드라마(80〃) 로맨틱 코미디(90〃)를 거치며 여전히 한국영화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요즘의 멜로영화에 대해 갖고 있는 대체적인 인상은 ‘가볍다’는 것.

“경쾌하고 가벼운 주제, 새로운 기법…. 시대가 달라졌으니 이해하지만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다.”(문정숙)

“영화는 시대를 반영하므로 더 나아지거나, 더 못하다고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배역의 나이가 같아도 옛날 영화의 배우들이 더 노숙해보이는 걸 느꼈다. 정신적 성숙도의 차이가 아닐까.”(이혜영)

두 사람의 공통된 소망은 ‘걸작’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필름이 없어져버린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되찾는 것이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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