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학 제대로 읽기 바람…현대문학 고전 속속 번역

  • 입력 1998년 11월 11일 18시 59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한국 문학계의 일본문학 수용 양상에도 변화를 몰고 오는 것일까. 최근 일본 현대문학의 ‘고전’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잇따라 번역돼 눈길을 끈다.

80년대말 이후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대명사는 ‘무라카미 하루키’. 그러나 일본문화 개방의 파고가 높아진 이래 번역되는 작품들은 하루키처럼 ‘팔리는’ 신세대작가보다는 오히려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등 20세기 전반기의 대표작가거나 60∼80년대 작가들의 문제작이다.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의 기획으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을 문고본시리즈로 출간하는 소화출판사는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晩年)’, 일본사(私)소설의 기원으로 꼽히는 다야마 가타이의 ‘이불’, 2차대전을 그린 전쟁문학의 걸작 ‘들불’ 등 9권을 펴냈다. 문학과의식사는 최근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를 펴냈다.

지난주 ‘마츠오 바쇼오의 하이쿠’와 키타하라 하쿠슈등 근대시인 3인의 시선집을 펴낸 민음사는 요시모토 바나나, 시마다 마사히코 등 신세대작가의 작품과 ‘고전’에 해당하는 다자이 오사무, 아베 고보의 작품을 병행해서 출간할 계획이다.

문학동네가 내달 출간할 ‘가레키나다(枯木灘, 가제)’는 60년대 작가로 분류되는 나카가미 겐지의 대표작. 오에 겐자부로와 동세대인 나카가미는 부락민등 일본 천민들의 생활사를 통해 일본근대화의 문제점을 고발했다. 문학과지성사가 3월에 출간한 번역서 ‘일본현대문학사’도 손꼽히는 역작. 최근 흐름에 대해 문학 출판계에서는 “상품성은 떨어지더라도 일본문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고 진단한다. 한글세대인 4·19세대 이후 일본문학에 대한 무관심과 감정적 배척, 그로부터 한세대 뒤 일본문학 전통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불어닥친 하루키 열풍 사이의 지적 공백을 메워보려는 시도라는 것.

문학평론가 황종연교수(동국대)는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대표작 ‘라쇼몽’도 일본 근대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과 ‘숲에서’ 두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것”이라며 “일본대중문화의 근원을 지배하는 의식을 알기 위해서도 일본문학의 체계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문학자 박유하교수(세종대)는 “노벨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를 제외하고는 60,70년대 활약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거의 번역이 안돼있다”며 이 시기 작품의 번역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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