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품 홍수]『꽝돼도 그만』 응모자 밀물

  • 입력 1998년 9월 21일 19시 13분


경기 일산 신도시에 사는 주부 윤모씨(36)가 최근 3년간 경품으로 얻은 물품명세. 에버랜드 1년 무료이용권 카메라 백과사전 현금 10만원. 경품이 걸린 광고를 오려두고 꾸준히 응모한 결과. “놀면 뭐하느냐는 생각에 짬짬이 시간을 투자한 게 결실을 거뒀다.”이에 반해 50여건의 경품행사에 빠지지 않고 응모했으나 모조리 ‘꽝’이 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주부 최모씨(28)는 “머리 벗겨지느니 땀흘려 번돈으로 사고 말지,뭐”라며 자위. 경품은 이솝우화의 ‘신포도’일까.

▼ 8천개나? ▼

경품정보 서비스업체 ‘헝그리정신’(www.ch777.co.kr)이 일간신문 방송 잡지 등에서 집계한 각종 경품은 △자동차 17대 △냉장고 등 가전제품 2백38대 △컴퓨터 1천7백96대 △휴대전화 1백4대 △여행상품 1천4백51건 △청소기 등 생활용품 4천4백53개. 집계되지 않은 상품권이나 지역상가 등이 내건 경품을 감안하면 훨씬 많은 ‘눈 먼 물건’이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 현대자동차 판촉팀 김창식차장은 “매월 20여대의 아토스가 경품용으로 판매되고 있다”고 설명. 대우자동차의 마티즈도 비슷한 수준.

▼ 확률 6만분의 1 게임 ▼

대우자동차의 ‘1등대우 드라이빙 어드벤처’. 1년간 대우차 1백11대를 무료로 빌려주는 이 행사에 이미 응모한 사람은 80만명. 대우자동차는 마감일인 다음달 10일까지 1백만명 이상이 응모할 것으로 추정.경쟁률 약 1만대 1인 셈. 매일유업이 진행중인 ‘GG유산균 이름맞히기’에서 1등인 경차를 거머쥘 확률은 6만대 1 이상. 그래도 같은 포도주 반잔을 놓고도 ‘반잔씩이나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적 성격은 응모를 계속한다는 심리학자들의 설명.

▼ 공짜는 없다 ▼

최근 유행하는 응모방식인 700서비스. 한 회사가 자동차를 경품으로 걸고 광고한다고 하자. 700업자는 자동차를 주최측에 제공하고 응모자의 인적사항과 취향 등을 디스켓에 담아 넘겨준다. 대신 정보이용료를 챙긴다. 통화당 평균 정보이용료는 1백88원. 때로는 적자도 보지만 응모인원에 따라 억대의 이윤을 남기기도 한다. 자유에드컴 김공렬상무는 “회사쪽은 경품과 고객관리자료를, 고객은 경품을, 700업자는 정보이용료를, 한국통신은 전화요금을 얻는 메카니즘”이라고 설명했다.

경품행사 주최측의 목표는 고객DB. 크라운제과 기획팀 기종표과장. “업종을 불문하고 고객 명단의 길이에 따라 회사가 흥하고 망하는 시대가 온다. DB를 통해 고객의 입맛을 미리 파악한 뒤 적당한 상품을 권하는 ‘표적마케팅’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경품행사는 필수다.”

▼ 그래도 누군가는 ▼

경품으로 재미를 본 윤씨. “응모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큰 가치가 있는 물건을 탈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에 이름을 걸어놓고 발표를 기다리는 것을 즐길 뿐이다.” ‘꽝행진’을 해온 최씨. “더 이상 허무함은 싫다. 작은 기대나마 감정낭비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 경품을 거는 업체는 고객명단을 차곡 차곡 쌓아가고 있으며 새자동차 본네트에 앉아 꽃다발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온다는 사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