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함사-낙산사 새벽의 해마중 『「희망」아 솟아라』

  • 입력 1997년 12월 24일 19시 41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박두진의 「해」중에서) 붉디붉은 동백꽃 한송이가 어두운 하늘로 고개를 내민다. 연못 속의 달같이 해말갛다. 달아오른 숯덩이 같다. 해는 오늘도 어김없이 떠오른다. 그러나 오늘의 해는 어제의 그 해가 아니다. 날마다 새롭다. 천지만물은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그러나 언제나 말이 없다. 진짜 큰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디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던가. 삶에 슬픔만한 거름은 없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상처를 사랑한다. 광야의 늑대처럼 홀로 동굴 속에서 아픈 상처를 핥는다. 곱게 곱게 싸서 평생을 함께 부대끼며 뒹군다. 한밤중 베란다에서 우두커니 혼자 담배 피우는 아버지의 굽은 뒷모습을 떠올린다. 자꾸만 세상 밖으로 등떼미는 시계 우는 소리. 우리는 지금 20세기라는 사막을 건너고 있다. 희망은 절망의 거름을 먹고 자란다. 눈물이 썩고 썩어 슬픔이 되고 그 슬픔은 삶의 거름이 되어 꽃을 피운다. 고단했던 한 해. 또 그렇게 가고 말았다. 세월에 묻었던 꿈을 다시 꺼내든다. 어쩌면 우리네 삶은 오르고 또 올라도 다시 미끄러지는 시지프스 언덕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게 삶인 걸.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다시 올라 가는 수밖에. 새해 신새벽 해맞이 여행. 거진, 화진포, 낙산 의상대, 동해 추암, 정동진, 평해 월송정, 경주 토함산, 감포 문무왕 수중릉, 해남 땅끝마을, 거제 해금강, 제주 성산 일출봉은 예부터 해돋이의 명소로 손꼽힌다. 그러나 꼭 그런 유명한 곳이 아니면 어떤가. 1월1일 신새벽. 찬물에 머리를 감고 동네 앞 동산에 올라가 보라. 맑고 수줍은 동자승의 붉은 얼굴이 이제 막 두둥실 떠오르지 아니 하는가. 세상에 썩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모든 슬픔도 아름답다. 내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안에 내가 있다. 새해에는 겉은 통나무 처럼 투박하고 속마음은 골짜기처럼 비우게 하소서. 공동묘지는 참으로 고요하다. 살아있는 동안에 그렇게 시끄럽던 자들도 뿌리로 돌아가면 조용하다. 이제와서 과연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북망산 아래에서 너는 누구고 나는 또 누구인가. 눈이 하얗게 내린 아침, 큰딸 웃음소리 같은 까치란 놈 우는 소리. 새벽 코피처럼 와아 터지는 연분홍 매화. 매일 기도 하기보다 기도같은 삶을 살게 하소서. 〈김화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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