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民예술상 수상 연출가 김정옥]자유를 노래하는 광대

  • 입력 1997년 12월 24일 08시 07분


상을 받게 되어 축하드린다고 전화를 건다. 『응…아니…어떻게 알았어』 언제나 그렇듯 어눌하고 어리둥절한 듯한 목소리. 동아일보사에서 시상하는 일민예술상이니까 기자가 아는 게 아닙니까하고 되묻자 웃는다.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늘 웃듯 입을 동그랗게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제3회 일민예술상 수상자로 뽑힌 연극연출가 김정옥(65). 49년의 역사, 96개 회원국을 지닌 국제극예술협회(ITI)에서도 동양인 최초로 선출된 세계본부회장. 지난 가을 서울에서 제27차 세계총회를 치름으로써 한국이 문화 발신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연극인. 「제3의 연극」이라 불리는 김정옥 스타일의 연극미학을 발전시켜온 연출가. 중앙대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 이렇게 다채롭고 화려한 이력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천진함, 그래서 상대를 방심하게 만드는 외교술(?)이 김정옥에게는 있다. 그래서 극단 자유 창단 때부터 31년간 함께 연극을 해온 이병복(극단 자유 대표)은 그를 「무슈 노골노골」이라고 부른다. 알루미늄 철사처럼 부드럽고 모가 없는 성격, 그러나 철사보다 훨씬 강하고 녹슬지 않는 특성. 김정옥의 이런 성향은 그가 만드는 연극에서 고스란히 살아난다. 『애매성이 예술의 본질이며 분명하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다』고 믿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자유다. 연극을 하는 것도 연극 안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연습을 하다가 배우가 『선생님, 동선을 여기까지 할까요』하고 물어도 명쾌하게 답하지 않는다. 『응…그렇지…그러나…』하는 더듬수(?)를 펴, 답답해진 배우가 스스로 결정하되 알고 보면 조화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때로는 「비빔밥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김정옥의 연극은 집단창작과 총체극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에게 A+B는 AB가 아니라 C다. 동양과 서양의 충돌, 감정의 동화와 이화, 배우의 즉흥성과 희곡의 충실한 재현, 사물놀이 유행가 막간극 등 이질적 요소 끼워넣기… 그래서 이름하여 「제3의 연극」이다. 61년 연극연출을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추구해온, 인생에서 가장 극적 테마인 죽음도 어김없이 삽입된다. 자유와 함께 그가 좋아하는 말은 광대다. 「리어왕」에서 왕에게 옳은 소리를 하는 유일한 자가 광대이듯이, 연극이야말로 세상이 거꾸로 돌아갈 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장르라고 믿고 있다. 그래도 국제통화기금(IMF)한파 때문에 가뜩이나 가난한 연극이 더욱 궁색해지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김정옥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60년대, 못 먹고 못 살았을 때도 연극을 했다. 삶의 질은 자동차를 탈 때보다 걸어다닐 때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에게 용기도 주고, 싫은 소리도 할 수 있는 것이 광대다』 스타일리스트로 유명한 그는 인터뷰날에도 카키색 코트와 같은 빛깔의 베레모, 여기에 대비되는 자줏빛 머플러를 두르고 나타났다. 50년대 파리 영화대와 소르본대 영화학연구소에서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밴 맵시다. 그는 일민예술상 수상이 어느 상보다도 기쁘다며 이렇게 말했다. 물론 다음과 같이 또박또박이 아니라 어눌하고도 둥글둥글하게. 『일민 김상만(一民 金相万)선생이 문화예술 부문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딴 상을 받게 돼 대단히 영광스럽습니다』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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